석 달 만에 -15kg … 초롱이 ‘어드벤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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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체격은 그녀에겐 형벌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플레이에 환호했지만 뒤에선 뚱뚱한 몸매를 비웃었다. 골프를 잘해도 마찬가지였다.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날씬하고 섹시한 선수의 몫이었다.

재미 동포 크리스티나 김(25·한국이름 김초롱). 뛰어난 지성과 빼어난 실력이 육중한 체격에 가려진 대표적인 선수다.

크리스티나 김은 2일 밤(한국시간) 영국 랭커셔의 로열 리덤 앤 세인트 앤스 링크스 골프장(파72·6492야드)에서 열린 LPGA투어 브리티시 여자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10번 홀까지 합계 1오버파로 신지애(미래에셋), 폴라 크리머(미국) 등과 함께 공동 4위를 달리고 있다. 주부 골퍼 카트리오나 매튜(영국)와 일본의 미야자토 아이와 함께 합계 1언더파로 공동 선두. 대회 2연패를 노리는 지난해 챔피언 신지애는 11번 홀까지 60㎝ 내외의 짧은 퍼팅을 잇따라 놓치면서 선두로 치고 나갈 기회를 놓쳤다. 한희원(31)이 합계 2오버파로 7위, 최나연(SK텔레콤)과 김송희(21)가 합계 3오버파로 공동 8위다. <오후 11시30분 현재>

크리스티나 김은 현재 ‘변신’ 중이다. 지난 4월부터 서울 강남의 한 비만 클리닉을 찾아 살을 빼기 시작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식이조절과 운동 요법을 실천한 결과 석 달여 만에 15㎏을 뺐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았고, 헬스 클럽에 나가서 지칠 때까지 구슬땀을 흘렸다.

프로골퍼가 시즌 도중에 체중을 줄이는 일은 큰 모험이었다. 자칫하면 샷이 망가질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김만규(59)씨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티나(크리스티나의 애칭)는 선두권에 나섰다가도 라운드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뚱뚱한 모습이 비춰질까 신경 쓰다 경기를 망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또 “어린 시절 내가 티나에게 직접 골프를 가르쳤기에 누구보다 딸을 잘 안다. 시즌 중 체중을 줄이는 것이 모험이었지만 나는 티나가 살을 빼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2004년 12월 한일여자골프대항전에 한국대표로 선발됐던 크리스티나 김은 이듬해 솔하임컵(미국 대 유럽 여자골프대항전)엔 미국대표로 출전했다가 국적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한일대항전 당시엔 “한국대표로 출전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가 이듬해 솔하임컵에선 “나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이라고 말한 것이 국내 네티즌들의 반발을 산 것이다.

아버지 김씨는 “티나가 한국말을 잘하지 못 하는 데서 비롯된 오해였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티나는 한국에 살지는 않지만 한일대항전에 한국대표로 선발된 것을 정말 자랑스러워했다. 솔하임컵에선 이민 2세가 미국대표로 뽑힌 데다 우승까지 하니 기분이 좋아서 한 말이었는데 이 말이 잘못 전해지면서 오해가 생겼다.”

크리스티나 김은 3라운드를 마친 뒤 현지 언론과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현지 기자들이 “많은 한국선수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서투르다”고 말하자 그는 “그건 미국인도 마찬가지”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또 “LPGA투어엔 일본·한국 선수들도 많이 활동하는데 중요한 것은 LPGA투어가 오락쇼가 아니라 전 세계 최고의 골프 투어라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크리스티나 김은 이번 대회를 마친 뒤 한국에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다가 21일 개막하는 솔하임컵에 다시 미국대표로 출전할 예정이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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