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21세기 한·일 동반자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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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21세기를 지향한 한.일 (韓日) 동반자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차제에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를 극복하고 두나라 국민들이 번영.평화 및 민주주의를 공유하는데 진실로 협력해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동북아에서 한반도의 안정이 어느 때보다 긴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은 과거사를 정리하고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를 정의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21세기의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 을 金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총리가 발표할 때 여기서 일본측은 종전보다 진전된 반성 및 사과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만족할만한 수준에는 미흡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기회있을 때마다 반성과 사과를 반복하는 전례를 지양하는 전기가 돼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일본이 말로만이 아닌 진심으로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의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촉구하기 위해 金대통령은 진솔하게 자신의 견해를 일본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특히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이 역사의 진실을 사실 그대로 읽고 배울 수 있게끔 역사공동연구와 청소년교육의 절박함을 강조해 일본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바란다.

역사는 하나의 문건으로 청산될 수 없으며 양국민들이 공동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갈 때 점진적으로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라 한다.

현재 동북아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때 한국과 일본은 경제.안보 및 정치에 대한 지역동반자로서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전세계에서 두번째 가는 경제대국이고 우리에게는 제2대 교역국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가능성은 양국을 동시에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를 탈피하기 위해서도 세계최대 채권국인 일본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일본도 제2대 교역상대인 한국에 투자와 기술전수를 확대하는 것이 국내불황을 벗어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국이 실천하고 있는 금융개혁과 규제철폐는 일본에도 귀중한 선례가 된다.

이처럼 시급히 요망되고 있는 경제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양국이 '실행계획' 을 채택하고 일본이 30억달러에 달하는 수출입은행 융자를 제공하기로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다.

또 양국이 정례적인 각료급 및 실무급회담을 제도화한 것은 양국간에 현안으로 대두하는 문제들에 공동으로 대처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교류와 접촉은 민간조직과 개인으로 구성되는 시민사회간에 더욱 더 활성화돼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장래에 대해서도 공동인식을 갖고 전략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1970년대부터 일본 정부는 한반도의 안정이 일본의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에 긴요하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지금이야말로 이 견해가 실감을 갖게 됐다.

한반도에서 안정과 평화가 유지돼야만 21세기에 동북아 안정을 좌우할 미.일.중 (美.日.中) 간의 협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서는 북한의 평화적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남북대화와 기본합의서가 이행돼야 한다.우리는 일본이 미국 및 중국과 함께 이러한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한.일간에 안보대화 및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한 한국과 일본이 사전협의와 합의를 통해 정책을 원만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앞으로 닥쳐올지도 모를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일정한 쟁점에 대해 양국은 비록 이견을 갖더라도 그것을 사전에 조정하고 통보하면서 공동시각을 갖도록 호혜적 협력을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과 일본은 단순히 양자관계를 넘어 지역 및 지구적 사안에 대해 다자협력을 시도해 나가야 한다.

예컨대 아시아의 외환위기를 해결하는 것을 비롯해 에너지.환경.인권 및 식량문제 등에 대해 양국은 공동협력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당장에 시급한 것은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공동관리하는 과제다.

우선 일본이 출입국관리를 간소화하고 무비자조치를 과감하게 실천하는 것은 우리의 일본 대중문화개방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 더욱 바람직한 것은 시민사회와 청소년들의 교류를 대폭 확대하는 일이다.

시민들과 청소년들이 많이 왕래하면서 직접 보고 대화하는 것이 신뢰를 쌓아가는 첩경이다.

양국민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 과거.현재 및 미래를 함께 걱정하는 한.일관계가 요망된다.

안병준(연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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