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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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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11면

완벽한 여름입니다. 햇빛과 비구름의 왕성한 기운에 산의 녹음도, 강의 흐름도 깊어졌습니다. 깊어진 여름날, 이른 아침에 나섰습니다. 아침 걸음은 생각이 비어 있습니다. 계곡이 너른 강을 만나는 곳으로 왔습니다. 방향도 없는 걸음으로 바위가 몰려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유독 마음을 끄는 바위 앞에 서서 한참 쳐다보고 또 쳐다봤습니다. 제 몸이 세월에 깎여 둥근 듯 둥글지 않은 바위입니다. 오만 년인지, 오천 년인지 모를 만큼의 시간이 걸려 만들어진 모습입니다. 나의 모습 또한 이만큼의 시간을 보낸 흔적입니다. 지금 나는 축적된 지난 시간의 현재이고, 미래의 현재입니다. 함부로 할 수 없는 현재입니다.

넘실대는 물살의 요란함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시간을 보냅니다. 홀로 낯선 자리에 앉아 지난 시간의 물을 지금 바라봅니다. 물살이 강에 가득합니다. 물은 가뭇없이 떠나가고 바위는 무거운 마음으로 홀로 남습니다. 여름이 시작하면서 갑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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