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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업형 수퍼, 사회적 합의와 기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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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기업형 수퍼(SSM: Super Supermarket) 문제에서 촉발된 대기업과 중소상인들의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일부 SSM 점포들은 일시 영업정지 권고를 받거나 개점을 자진 연기했다. 그제는 서울시 서점조합이 한 대형 문고의 신규 점포 개설을 막아달라며 사전조정을 신청했다. 사회 갈등이 안경점·꽃집·화장품·주유소·제과점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생존권을 앞세운 영세상인들의 반발과 격앙된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평균 1000㎡ 규모의 SSM은 생활용품은 물론 축산물·채소·생선까지 취급해 동네 수퍼나 전통시장과 겹친다. 또 SSM은 3300㎡ 이상의 대형마트(등록제 대상)와 달리 쉽게 개설할 수 있고 넓고 깨끗한 매장에다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대형 할인마트 때문에 한 차례 큰 타격을 입은 중소상인들로선 또다시 SSM의 공습이 시작되자 두려움에 떠는 것은 당연하다.

영세상인들의 불만이 갑자기 폭발한 데에는 대기업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이들은 대형 할인점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틈새시장인 SSM에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문제는 지나친 욕심이 탈을 부른 것이다. 유통산업 관련법이 개정될 조짐을 보이자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점포를 개설하려고 속도전을 벌이면서 영세상인들의 집단 반발을 자초한 것이다.

정치권과 정부도 사태 악화에 한몫을 했다. 서민정치로 돌아선 이명박 대통령은 연일 “영세상인을 보호하는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장경제에서 서민경제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에는 ‘영세상인’이란 단어가 숭배의 대상이다. ‘영세상인’이란 말만 나오면 경제논리는 외면하고 앞다투어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흐른다. 이런 혼선을 바로잡아야 할 정부도 혼란을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어제는 “경쟁을 통해 유통·서비스 산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고 하다가 오늘은 “대기업과 영세상인들이 자체적으로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SSM 문제는 휘발성이 강하다. 우리 사회가 둘로 쪼개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자칫 목소리 큰 집단의 손을 들어주면 다른 분야에도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세계 어디를 봐도 정해진 해답은 없다. 미국은 별다른 규제 없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월마트 같은 세계적 기업을 탄생시켰다. 이에 비해 북유럽은 허가제·등록제에다 영업시간·취급품목까지 제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도 사회적 합의와 기준을 스스로 마련할 수밖에 없다. 여야는 법으로 유통시장을 규제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일시적인 진통제에 불과할 뿐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자유시장 경제에도 맞지 않다. 대기업들도 수익성만 쫓아서는 안 된다. 지방 경제를 착취한다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지역사회의 일원이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 주민 채용, 수익의 현지 재투자, 지방 특산물 판매 등 지역 친화적인 조치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이것이 상생의 첫걸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