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총격 요청사건' 말 아끼는 국민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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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 을 대하는 국민회의의 입장이 2일 신중해졌다.

지난 대선 당시 이회창 (李會昌) 후보의 대선 비선 (秘線) 조직원으로 거론되는 3명의 '총격 요청' 부분과, 李총재 등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관련 여부를 나눠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신중론에는 李총재를 압박하는 전략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부회의 = 국민회의는 이날 오전 간부회의 뒤 정동영 (鄭東泳) 대변인을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해 여야 정파를 떠나 분노하고 규탄해야 한다는 데는 이회창 총재도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며 "총격 요청 사실과 李총재의 관계에 대한 부분은 엄밀하게 분리돼야 한다" 고 입장을 정리했다.

또 "총격 요청 사건과 구정권.한나라당 지도부와의 관련.개입 여부는 검찰수사를 냉정히 지켜봐야 할 것" 이라며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전날 국민회의가 李총재의 직접적인 해명 촉구와 함께 "李총재는 어떤 형식으로든 사건을 알았을 것" 이라며 몰아붙였던 것에 비춰보면 모종의 '전략 변화' 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기자간담회 = 조세형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이 오후 간담회에서 李총재 관련 부분에 대해 말을 아낀 것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趙대행은 세풍 (稅風.국세청 불법자금 모금사건)에 대해선 "분명한 사과" 를 주장했지만, 신북풍 (新北風) 의 李총재 관계 여부는 "수사결과를 지켜보자" 고 피해갔다.

◇신중론의 배경 = 국민회의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이번 사건이 정국에 미칠 가공할 파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李총재 관련 사실이 확인될 경우, 李총재 본인의 몰락은 물론 정치판의 대개편이 예상된다.

반대로 李총재 개입의 증거를 찾지 못할 경우 '이회창 죽이기' 라는 한나라당의 역 (逆) 공세에 직면하게 된다.

사건의 중대성에 비춰 결국은 한나라당의 기반 와해로 연결될 것이라는 자신감도 속도조절의 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趙대행이 "李총재 동생의 연루설은 속히 규명돼야 하고, 아주 중요한 부분" 이라고 강조한 것도 사건의 마지막 귀착점이 李총재가 될 것이란 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동생의 연루사실이 드러나면 李총재는 직.간접적 연관성을 해명하고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할 것" 이라는 趙대행의 언급은 한나라당에 여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증 (物證)' 을 통해 李총재를 분명히 압박하겠다는 고단수 전략이란 얘기다.

국민회의는 그러면서 이날 총무회담에서 검찰수사 발표 때까지 일단 정치권은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지켜보자는 '한시적 정쟁중단' 제의를 했다.

사건을 정치쟁점화하려는 야당의 요구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국정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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