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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밀문서서 드러난 '박정희-미국 핵 줄다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의 핵무기.미사일 개발 의지를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미 정부가 펼친 노골적 압력과 설득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물론 주한 미 대사관 등 미국의 한국정책 핵심 주무부서 책임자간에 입체적이면서도 긴밀하게 주고받은 극비 대화가 상세히 열거돼 있어 한국 현대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남북간 군비경쟁이 극으로 치닫던 69년 朴대통령은 닉슨 행정부가 괌 독트린을 발표해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핵개발을 결심하게 된다.

朴대통령은 71년 미7사단이 철수할 무렵, 경제2수석실을 중심으로 핵개발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이후 원자력연구소 특수사업 부서.국방과학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극비리에 추진됐던 핵개발 계획은 국내외 한국인 핵기술자 스카우트, 73년 겨울 '핵무기 개발계획 보고서' 작성 으로 무르익기 시작했다.

계획은 6~10년간에 걸쳐 20㏏짜리 플루토늄탄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규모) 을 개발한다는 것. 朴대통령은 겉으로는 미사일 개발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핵무기 개발을 위해 미국 록히드.맥도널 더글러스사와 프랑스 생고뱅사 등 3개사를 동원, 서로 경쟁하게 하는 지능적 전술을 구사했다.

당시 주한 미 대사관의 전문에 "프랑스사 때문에 록히드가 애가 닳아 있다" 고 한 내용은 이런 전술이 맞아떨어졌음을 보여준다.

朴대통령의 야심은 74년 12월 이상한 낌새를 느낀 미 국무부의 제동으로 굴절되기 시작한다.

이번 문건은 미 정부가 한국의 핵개발 시도를 눈치채면서부터 포기압력을 가하는 내용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미 국무부는 74년 12월 11일 주한 미 대사관에 "미 정보기관에 한국의 핵능력을 평가하라고 지시했다" 고 밝히고 있으며 미 대사관은 본국에 '노골적이며 강압적 수단' 을 동원해서라도 한국의 핵보유를 막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압력의 실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朴대통령의 강공 (强攻) 이 미국의 대한 정책을 바꾸게 한 부분도 있음이 이번 문건에서 밝혀졌다.

朴대통령이 75년 5월 1일 당시 스나이더 주한 미 대사에게 "미국을 못믿겠다.

자주국방을 위해서도 미사일 개발을 하겠다" 고 천명하자 당장 "미군철수라는 의회 방침을 바꿔줘야 한다" 는 긴급전문이 나간 것이다.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와 경제적 지원 중단 등의 압력으로 결국 76년 1월 한국은 핵 재처리방침 포기를 시사하게 됐다.

이후 朴대통령은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재처리 사업을 '화학처리 대체사업' 으로 이름을 바꿔 핵개발 야심을 꺾지 않았으나 결국 79년 피살로 한국의 핵개발 계획은 사실상 막이 내렸다.

워싱턴 =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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