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유실된 형체없는 묘소…서글픈 성묘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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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달 폭우로 전체 7만7천여기의 묘 가운데 4천96기가 훼손된 파주시 용미리.벽제리 서울시립묘지. 24일 오후에도 복구가 한창이다.

여기저기서 인부들이 무너진 봉분을 새로 쌓고 쓰러진 묘비를 세우느라 부산하다.

무너진 일부 묘소는 검은 망사나 비닐에 덮여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37%인 1천4백90기가 방치돼 있으며 1백87구의 시신은 발견조차 안돼 유족들은 최악의 한가위를 맞게 됐다.

게다가 가까스로 수습은 했으나 신원확인이 안된 시신이 58구이며 조각난 유골 2천4백여점이 '주인' 을 못 찾고 있다.

장묘사업소측이 유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복구를 권유하고 있으나 일부 유족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등을 호소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복구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 장묘사업소측은 지난 15일부터 이들 시신과 유골을 용미리 제1묘지의 3곳과 벽제리묘지 1곳 등 임시안치소에 보관중이다.

안치소 앞에는 분향소도 차려 놓았다.

사업소 관계자는 "목재기둥에 하얀 광목만 둘러져 있는 임시분향소를 이달말까지 가건물 형태로 바꾸고 제단과 향로도 제대로 꾸며 성묘객들을 맞겠다" 며 "추석전에 도로복구와 사방공사 등도 끝내 성묘객들의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 고 밝혔다.

서울시는 올 추석에 수해 등의 영향으로 예년보다 많은 성묘객들이 이곳을 찾을 것으로 보고 현재 1천5백여대 규모의 주차장 이외에 1천60대 규모의 임시주차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전체 7천4백여기 묘 가운데 1천4백여기가 유실되거나 파손된 양주군장흥면울대리 운경공원묘지. 24일 오후 파손된 묘를 복구하던 최도인 (崔道仁.회사원.51.파주시문산읍문산3리) 씨는 "폭 3m.높이 1.5m의 축대가 무너져내려 어머님 묘가 비석과 상석까지 쓸려 내려가는 피해를 당했다" 며 "추석이 다가오는데도 복구가 안돼 인부 12명을 동원해 봉분을 쌓고 비석과 상석을 찾아 정돈했지만 축대 쌓을 일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고 말했다.

묘지 앞에서 만난 박상열 (朴商烈.41.회사원.인천시부평구부평3동) 씨는 "부모님 묘소가 형체도 없이 사라져 유골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며 "올 추석 때 조상 뵐 면목이 없어 죽고 싶은 심정" 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피해자 진임권 (陳任權.41.자영업.고양시일산구백석동) 씨도 "장인어른의 묘 위로 무너진 축대와 흙이 뒤덮여 있어 손도 못쓰고 있다" 고 안타까워 했다.

관리사무소측은 묘가 통째로 없어진 1백90여기에서 62구의 시신을 수습해 연고자를 찾기 위해 유전자 감식을 준비중이며 형체를 알 수 없는 유골은 따로 모아 합동분향소에 안치했다.

매일 굴착기 4~5대와 복구반 40~50명을 동원, 유실된 묘역에 봉분을 올리고 내년 봄 잔디를 입힐 때까지 임시로 비닐을 씌운 상태이며 모래주머니를 쌓아 축대 복구작업도 벌이고 있다.

관리사무소가 주장하는 복구 진척도는 80%. 이밖에 양주군장흥면일영리 신세계공원묘지도 6천9백여기중 9백50여기가 유실 또는 파손됐으나 임시복구 비용이 바닥나 추석 이후에나 본격적인 복구에 나설 예정이다.

이 곳에서도 62기의 묘가 완전 유실됐지만 유골이 수습된 것은 18기밖에 안돼 유가족들을 비통하게 하고 있다.

부모 묘소가 모두 사라진 윤태수 (尹泰銖.62.회사원.서울용산구서계동) 씨는 "계곡에다 흙을 메워 묘지를 분양해 수해를 당했다" 며 "공원묘지측을 고발하겠다" 고 말했다.

전익진.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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