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 시(詩)가 있는 아침 ] - '첫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박용래(1925~80) '첫눈' 전문

눈이 온다 눈이 온다
담 너머 두세두세
마당가 마당개
담 너머로 컹컹

도깨비 가는지
(한숨만 참자)
낮도깨비 가는지



불볕 더위지기로 첫눈과 도깨비를 불러온다. 이 좋은 시 한편을 대부분 독자는 놓치고 있는 듯하다. 이 시가 어려운 것은 도깨비, 그것도 낮도깨비 정체 때문이리라. 첫눈은 대개 소식도 없이 살짝 왔다가 지나가 버린다. 그러므로 그 안쓰러움의 정서를 도깨비에 위탁한 것이리라. 보리 범벅을 좋아하고 왼씨름을 좋아하는 우리 도깨비. 서양의 흡혈귀와는 달리 "아우 먼저 형 먼저" 비설거지도 잘해 주는 우리 얼굴 같은 뿔없는 도깨비. 그런데 요즘은 왜 통 도깨비를 만날 수 없는 걸까. 산간 오지마을까지 들어간 전깃불 때문이란 소문도 있긴 하다. 오늘밤같이 무더운 날은 경복궁 근정전에 들러 용마루 양끝에 앉은 도깨비라도 불러내려 왼쪽 밭다리 한판 붙고 싶구나. 얼쑤!

송수권<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