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미사일과 금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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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90년대초만 해도 백두산 관광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한.중수교 전 어렵사리 비자를 받아 홍콩~베이징 (北京)~옌지 (延吉) 를 거쳐 오른 백두산 참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

당시 관광경비는 2백만원을 웃돌았다.

93년 수교가 되고 서울~베이징간 직항로가 열리면서 5박6일에 1백50만원선이었다.

수교후 2년간은 전세기가 뜰 정도로 관광러시를 이뤘다.

당시 우리는 왜 그토록 가슴 설레며 백두산 관광에 올랐던가.

베이징의 화려한 문화유물과 웅대한 자금성 (紫禁城) 구경도 마다하고 지루한 버스여행에 시달리며 허위단심 백두산을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오로지 민족의 성산 (聖山) 을 참관하겠다는 이유 하나였다.

사치성 호화관광을 즐기자는 것도 아니고 산천경개 유람을 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며칠 걸려 당도한 백두산, 그것도 남의 나라 땅에서 천지를 내려다보며 민족과 역사, 그리고 나라 장래를 생각하는 엄숙한 성지순례 (聖地巡禮) 였다.

민족의 영적 (靈的) 교감 (交感) 장소이기도 했다.

현대 정주영 (鄭周永) 명예회장이 소를 몰아 판문점을 통과하고 금강산 관광.개발에 남북이 합의하는 장면을 보면서 모두가 환호하고 감격했다.

그게 불과 석달 전이다.

지금은 어떤가.

한 연구소가 이북도민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여러 이유 때문에 다녀올 생각이 없다' '별 관심이 없고 좋은 일도 아닌 것 같다' 가 77%로 단연 금강산 관광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석달 전 환호와 감격이 어째서 급전직하의 별볼일없는 사치성 관광으로 둔갑하게 됐는가.

금상산 관광 하나를 두고 보더라도 남북문제에 관한 한 우리 모두가 얼마나 변덕스러우며 시류에 편승하는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이 부정적으로 돌아선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 첫째가 북한의 위성발사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토록 위력적인데 우리는 뭘하고 있나 하는 반성이 일고 금강산 관광비용 1백30여만원이 미사일 비용이 된다는 논리로 비약하면서 금강산은 우리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백두산 관광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가 93년이다.

이때 북한은 핵비확산조약 (NPT) 을 탈퇴하면서 핵개발에 착수하겠다는 위협을 세계를 향해 과시했다.

세계가 들끓고 우리 또한 북핵 (北核) 억지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가 북.미 제네바 핵합의를 통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구성이었다.

이무렵 백두산 관광을 두고 시비를 건 사람은 없었다.

북핵 위협과 백두산 참관은 별개 문제였다.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치면 위성발사보다 핵개발이 훨씬 더 가공할 만하다.

그런데도 위성발사 하나로 금강산 관광은 물건너가고 있다.

안보는 안보로 대응해야 하고 미사일에는 미사일로 대응하거나 한.미.일간의 외교.안보적 공조를 통해 북의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이고 또 그렇게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기왕 쓰는 관광비용이라면 중국땅보다 북한땅이 식량지원 차원에서도 효과적이다.

그런데도 금강산 관광을 인적.물적 교류도 없는 소비적 사치관광으로 몰아붙이고 나아가 남북간 교류.협력을 마치 '뒷돈' 거래로 성사시키는 매국적 이적행위로 매도하는 분위기마저 조성하는 여론 움직임이 있다.

금강산 관광을 속죄양으로 삼아 남북을 군사적 대결구도로만 몰아붙이는 위험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금강산이야말로 민족의 성산이고 영산 (靈山) 이다.

이 영산을 남의 땅 아닌 내 땅을 밟으면서 가는 성지순례가 금강산 관광이다.

한 실향민이 방송 인터뷰에서 금강산 여행은 단순관광이 아니라 고향방문이라는 외침이 나의 심금을 울린다.

비록 고향이 아니더라도 북의 흙냄새를 맡으면서 상팔담에 올라, 천선대에 올라 내 고향 내 부모 내 자식의 살냄새를 맡겠다는 실향민의 마음에 못질을 해선 안된다.

인적.물적 교류가 없는 관광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하지만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관광이 개발로 이어지고 수많은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호텔을 짓고 부두공사를 할 것이다.

관광과 개발로 끝나지 않고 전력사업.자동차사업으로 이어지고 남한 기업이 북한에 진출하면서 남과 북이 상호보완적이고 상생적인 경제협력을 이룬다면 이게 바로 전장 (戰場) 의 벽을 허물고 시장의 논리로 남북간 통합을 이루는 시작이 되지 않겠는가.

냉탕과 열탕을 오가며 냄비 끓듯 하는 논리로 민심을 교란하지 말라. 금강산 관광은 남북간 교류.협력의 종점이 아니고 출발점일 뿐이다.

권영빈(논설위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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