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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새만금, 길게 보고 천천히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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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런 점에서 새만금은 이명박 정권용 과제이기도 하다. 새만금엔 이 정권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공한다면 첫째,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대운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새만금에 이런저런 이유로 얽혀 있는 대통령은 MB를 포함해 모두 다섯이다. 그들 중 누구도 아직 새만금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첫 단추를 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새만금을 ‘호남표’라는 ‘정치적 욕망’으로 품어냈을 뿐이다. YS는 뒤치다꺼리에 바빴다. 96년 시화호 오염 문제가 불거지면서 새만금이 이 땅에 본격적인 환경 담론을 열었기 때문이다. 진작부터 군불을 지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된 DJ는 환경단체들의 격한 반발과 소송에 부딪혀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5년의 환경재판 끝에 새만금 방조제는 2006년 완공됐다. 물을 막는 데만 15년이 걸린 것이다. 비로소 땅을 어떻게 메우고 그 땅에 뭘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고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몫이었지만 정권 말기의 그에게 새만금은 큰 관심 밖이었다. MB가 새만금을 ‘한국의 두바이’로 만들겠다며 대선공약을 내놓은 것이 이즈음이다. 지난주 첫 그림을 내놨지만 아직 공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

둘째, 요즘 MB가 국정 철학으로 강조하는 중도강화의 구체적 모델이 될 수 있다. 새만금을 끌어안는 것은 호남을 끌어안는 것이요, 서민과 야당을 끌어안는 것이다. 지역 균형발전이란 큰 틀에도 맞는다. 좀 많다 싶을 정도로 돈을 쏟아 붓겠다 한들 호남이 텃밭인 야당이 반대할 명분이나 이유를 찾기 어렵다. 개발에 따른 갈등과 반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셋째,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실천할 수 있다. 새만금이 명품 국제 도시로 자리매김하려면 국내외 기업의 투자가 필수다. 과감한 규제 철폐와 지원은 기본이다. 바로 이웃에 새만금의 두 배 덩치인 중국의 빈하이(濱海)와 경쟁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발로 뛰고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도 성공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넷째, 녹색성장의 시금석이다. 여전히 새만금은 환경 담론의 중심지다. 삼보일배의 몸을 내던지는 환경 운동을 부른 곳답게 환경단체의 감시의 눈길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이를 아우르고 보듬는 녹색성장, 녹색 개발이 필수인 이유다.

그렇지만 조급함은 금물이다. 큰 공을 이루려면 길게 보고 천천히 가야 한다. 소의 해를 맞아 연초에 유행한 사자성어가 호시우보다. ‘호랑이의 시선(虎視)’과 ‘황소 걸음(牛步)’은 둘 다 중요하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우보 쪽이다. 어떤 영악함도 우직한 성실함을 당해낼 수 없다. 지금 새만금에 필요한 것도 우보다. 임기 내에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자칫 보물단지를 만들려다 애물단지를 만들 수 있다. 후손에게 여지를 남겨주는 여유도 필요하다. 그들이 상상력을, 실력을, 열정을 담아낼 공간을 남겨두자는 거다. 사족이지만 이 참에 만경평야와 김제평야의 머리글자를 따 지어진 새만금 이름의 속뜻을 이렇게 바꾸는 건 어떨까. (새)로 (만)들어지는 (금)수강산으로. 중앙

이정재 SUNDAY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