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98 세제개편안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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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심각한 경기침체국면에서 조세제도는 두 가지 상반된 요구에 직면해있다.

하나는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충분한 재정수입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의 불씨를 보전하기 위해 감세를 통해 내수를 지탱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98년 세제개편안은 이러한 '당면과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 이라는 관점에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시야를 보다 넓혀 현 경제위기의 역사적 연원과 향후 경제운영원칙에 입각하여 98년 세제개편안을 평가하고 싶다.

현재의 위기는 경제규모의 성장에 걸맞게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재조정하는데 실패하고 정부주도의 경제운영을 계속해온 데 하나의 원인이 있다.

따라서 향후 경제운영의 커다란 원칙은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재조정하고 근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무엇이든 간여하는 정부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는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새길 필요가 있다.

세제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세제가 다루고 해결해야 될 근본문제에만 주력해야 한다.

각종 경제대책에 실효성없는 세제개편을 끼워넣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98년 세제개편안은 이러한 의미에서 '근본에 충실한 세제개편' 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행 세제의 근본적 문제는 그동안 조세가 지나치게 재원조달목적에 충실하게 운영된 점에서 비롯된다.

편의적으로 신설되어온 세목, 방만하게 운영된 각종 비과세.감면, 방대한 규모에 이르는 음성.탈루소득과 그 결과 취약해진 소득재분배 기능 등이 우리 세제가 안고 있는 본질적 문제이다.

98년 세제개편안은 세목수를 10개로 줄이고 조세지출예산제도를 도입.준비하며 음성.탈루소득을 포착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하는 등 문제해결에 첫 단추를 끼운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세수확보를 당장 손쉬운 세목의 신설이 아니라 그동안 과세 사각지대였던 부문에 대한 과세강화를 통해 달성하겠다는 것은 소득재분배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다.

그러나 98년 세제개편안에 누락된 과제도 있다.

현재 유보되고 있는 금융소득종합과세 실시나 소규모사업자에 대한 과세제도의 정비 등은 형평성 제고 차원에서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임주영 박사(한국조세연구원 연구조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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