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벨리니 '캐퓰릿가와 몬테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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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벨리니 '캐퓰릿가와 몬테규가' , 소프라노 에바 메이 (줄리엣) , 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 (로미오) .뮌헨방송교향악단, 지휘 로베르토 아바도 (RCA)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은 연극.영화는 물론 오페라.서곡 등 음악의 소재로도 즐겨 사용되었다.

프로코피예프의 서곡, 베를리오즈의 교향곡, 구노.벨리니의 오페라, 번스타인의 뮤지컬이 그런 작품들.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 않게 널리 연주되는 벨리니의 '캐퓰릿가와 몬테규가' 는 전형적인 벨칸토 오페라. 남자 주인공 로미오역을 테너 대신 메조소프라노가 맡도록 돼 있다.

이 앨범의 백미 (白眉) 는 불가리아 출신 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 (33)가 들려주는 '바지 역할' . '박쥐' 의 오를로프스키 공작처럼 여성이 바지를 입고 남자역할을 해낸다.

1830년 베네치아 초연때부터 로미오역은 메소조프라노가 해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줄리엣이 아니라 로미오다.

지난 66년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테너에게 로미오역을 맡게해 스칼라 극장에서 상연했지만 메조소프라노가 맡는 게 일반적이다.

벨리니 오페라의 특징은 냇물처럼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흐르는 선율. 그래서 가끔 극적인 긴장도가 떨어지는 흠이 있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말년에 작곡된 오페라답게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눈부신 활약으로 무대의 깊이를 더해준다.

고독에 빠진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각 첼로와 클라리넷 독주로 묘사하는 대목도 가슴을 저미게 한다.

오페라는 2장의 CD로 막을 내린다.

1832년 파리 초연때는 당시 유럽 최고의 메조소프라노였던 마리아 말리브란이 무덤 장면에 불만을 느낀 나머지 니콜라 바카이 (1790~1848) 의 오페라 '줄리에타와 로미오' 중 2막 2장 이후를 대신 연주했다.

무덤에서 줄리엣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는 내용의 긴 아리아 때문이다.

바로 그 부분을 보너스 CD에 담아 함께 수록했다.

'잔인한 캐퓰릿가 사람들이여, 들으라' 에서는 말리브란이 친구 로시니에게 부탁해 더 화려하게 편곡한 부분도 포함시켰다.

여기서도 넓은 음역을 오가면서 감정의 기복을 살려내는 카사로바의 활약이 더욱 돋보인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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