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원춘씨 납치사건이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두봉 주교가 배후 조종자로 지목돼 추방명령까지 받았던 안동가톨릭농민회 '오원춘 (吳元春) 납치사건' 은 79년 8월 YH사건에 이어 유신정권의 종말을 알린 유명한 사건이었다.

당시 33세였던 吳씨는 경상북도영양군청기면에서 대대로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그는 가톨릭 안동교구 농민연합회 이사로 청기농민분회를 조직, 회장을 맡고 있기도 했다.

청기농민들은 78년 가을 군청에서 권장한 감자씨를 심었다가 이듬해 봄 싹이 나지 않자 피해보상대책위원회를 결성, 피해보상 요구집회를 잇따라 열었다.

79년 5월 피해보상운동을 주도하던 吳씨가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주일 만에 나타난 吳씨는 중앙정보부원 2명에게 납치돼 울릉도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그만두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영양성당 사제에게 고백했다.

이에 안동교구 신부들은 즉각 대책위원회를 구성, 성명서를 내고 당국에 공식 항의했다.

경찰은 79년 7월 27일 안동교구협에 난입해 은신중인 吳씨와 정호경 노동사목지도신부를 강제 연행한 후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가톨릭은 김수환 (金壽煥) 추기경과 1백20여명의 신부가 참석한 가운데 안동성당에서 이에 항의하는 기도회를 열었고 가톨릭의 항의집회는 광주.인천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吳씨는 재판에서 납치됐었다는 양심선언을 번복, 검찰의 공소사실을 시인하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양심선언을 번복하면서 "두봉 주교가 면회를 와서 목숨을 건지려면 시인하라" 고 충고해 그렇게 했다고 했다.

이때 안동교구장이며 한국가톨릭 노동사목 담당이었던 두봉 주교는 吳씨사건에 항의한 일련의 가톨릭집회와 사건의 배후 조종자로 몰려 추방명령을 받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