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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대중교통 이용해 보니 … “세 정거장 가려 버스 2시간40분 기다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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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체장애인 김미연씨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전철에 오르고 있다.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앞바퀴가 걸려 있다. 서울메트로 117개 역 중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이 20cm 넘는 데가 16곳에 달한다. [김도훈 인턴기자]


“4분 거리 버스 세 정거장 가려고 2시간40분을 기다렸어요. 이 정도면 KTX로 부산까지 갈 수 있는 시간 아닌가요?”

지체장애 1급 김미연(43)씨가 지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김씨는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발족한 ‘장애여성 여행(女幸) WISE단’ 일원으로 22일 서울시내 버스·지하철 안전도를 점검했다. 김씨는 점검 후 “거의 모험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영등포구 당산동 삼성래미안아파트 역 버스정류장.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버스 출입구에 계단이 없고 슬로프가 있는 저상버스만 이용할 수 있다. 1시간쯤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정류장 어디를 봐도 저상버스 배차시간 안내문이 없었다. 운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1시간30분을 더 기다리라”고 했다.

2시간40분 지나서야 버스가 왔다. 저상버스 슬로프를 작동하면서 출발에 5분이 걸렸다. 여기저기서 승객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버스기사 양진철(57)씨가 김씨와 승객 사이에서 진땀을 흘렸다. 그는 “하루 버스가 16대 운행되는데, 저상버스는 4대뿐”이라 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내에서 운행되는 저상버스는 1036대다. 일반버스 14대당 한 대꼴이다. 지난해 국토해양부는 2013년까지 서울을 비롯, 전국의 시내에서 운행하는 버스의 50%인 1만4500대를 저상버스로 교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 교통정보센터 김종희씨는 “민간 버스회사에 저상버스를 도입하라고 강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신길운수 관계자도 “저상버스 사는 데 일반버스(약 8000만원)보다 1억원 정도 더 들고 운영비도 비싸 많이 도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하철 이용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김씨는 1호선 영등포역 휠체어석 표시가 돼 있는 10-1 승강장으로 갔다.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이 14㎝였다. 김씨는 역무원에게 이동발판 서비스를 요청했다. 역무원은 “발판이 없다”며 뒤에서 밀기 시작했다. 김씨가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 앞바퀴가 틈에 빠져 앞으로 엎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가 운영하고 있는 117개 역 중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이 20㎝ 이상인 역은 16곳, 서울도시철도의 148개 역 중 13㎝ 이상의 틈이 있는 역은 22개다.

김씨의 나들이는 이날 오후 3시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 끝났다. 버스-전철-버스를 이용하는 데 4시간 가까이 걸렸다. 장애인이 아니라면 넉넉잡아 20분이면 충분했을 거리다.

안혜리 기자, 최예나 인턴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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