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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24>‘이은상 문학관’ 시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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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10면

탤런트 반효정과 이야기를 나누는 1970년대 노산 이은상(오른쪽)의 모습.

‘내 고향 남쪽 바다/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꿈엔들 잊으리요/그 잔잔한 고향 바다/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가고파라 가고파’. 작곡가 김동진이 곡을 붙여 일제 치하부터 70년이 넘도록 널리 애창되고 있는 이은상의 시조 ‘가고파’의 첫 수다. 이은상이 이 시조를 지은 것은 아직 20대 후반이었던 1930년대 초였다. 그 무렵 그는 동아일보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33년 신문사 주최의 백두산 탐사여행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자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친구 양주동에게 연락해 백두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평양에 들러 해후하기로 약속한다. 이를 계기로 양주동은 특강을 열어 학생들에게 이은상의 시조 ‘가고파’를 가르친다. 그때 그 학교 음악과에 재학 중이던 김동진은 호기심에 그 강의를 듣고 ‘가고파’를 옮겨 적어와 밤새워 곡을 붙인 것이 가곡 ‘가고파’다.

본래 이 작품은 10수였으나 가곡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길어 처음에는 앞의 4수만으로 노래를 완성했다. 73년은 1903년생의 이은상이 고희를, 1913년생의 김동진이 회갑을 맞는 해였다. 그 기념으로 김동진은 주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가고파’의 5수부터 10수까지를 새로 작곡해 숙명여대 강당에서 발표회를 열었다. 그때 수천 명의 인파가 모여들어 가곡 ‘가고파’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얼마나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실감케 했다.

이은상은 500~600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문학적 업적은 ‘전래의 시조 형식을 현대적 운율로 소화해 냈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가고파’를 비롯해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고향생각’ ‘사우’ 등 그의 수많은 작품이 가곡으로 만들어진 것도 그 까닭이다. 아무튼 우리 민족문학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시조가 오늘날까지 연면히 맥을 이어오는 데 있어 그가 이바지한 공로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은상의 그 같은 문학적 공로는 늘 그를 뒤따르는 이런저런 정치적 구설 때문에 힘을 잃곤 했다. 이를테면 일제 때는 친일행위를 했고, 자유당 시절에는 ‘문인 유세단’을 조직해 전국 유세에 나서 부정선거에 동조했으며, 5·16 후에는 공화당 창당선언문을 기초하는가 하면, 유신정권하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내세워 독재 논리를 정당화했고, 전두환 정권 때는 국정자문위원을 지냈다…는 등 정치적 성향이 짙은 그의 행보에는 항상 눈총이 따랐고 뒷말이 무성했다.

물론 이은상 편의 입장에서는 반박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가령 일제 말기인 43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돼 함흥 감옥에서 복역한 전력이 있으며, 유신 정권 치하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문공부 장관직을 제의했으나 고사했다는 항간의 소문 따위가 그것이다. 전두환 정권 때 국정자문위원이 된 것도 그들의 일방적인 지명에 따른 것인데 왜 지탄받아야 하느냐는 논리다. 특히 그런 식으로 미세한 부분까지 들춰내자면 조그마한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이 이은상 옹호론자들의 반박이었다.

이런 시비가 그의 생전에는 뒷공론으로 뭇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더니 82년 9월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툭하면 이슈화되곤 했다. 사후 30년이 가까워오는 요즘 그의 출생지인 마산의 문화계가 다시금 이은상 문제로 시끄럽다고 한다. ‘미래문화신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노비산 그린공원에 세워진 ‘마산문학관’의 명칭을 둘러싸고 마산 사회가 양쪽으로 갈려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마산문학관’은 99년 건립 계획 수립 당시에는 이 지역 출신인 이은상을 기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딴 ‘노산(鷺山)문학관’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그러나 2005년 건물이 완공되면서 이은상의 정치적인 행적을 문제 삼은 시민사회단체의 반대 여론이 들끓게 되자 마산시는 본래 목적과는 달리 마산 출신 등 작고 문인 22명의 문학 유품을 합동 전시하는 ‘마산문학관’으로 개관하게 된 것이다.

최근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마산문인협회가 ‘마산문학관’을 본래의 목적과 취지에 따라 ‘노산문학관’으로 되돌려놔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라고 한다. 여기에 마산시의회까지 동조하고 나섰지만 시민사회단체도 만만치 않게 ‘불가 운동’을 펼쳐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가고파 문학관’은 어떠냐는 중도 입장의 의견도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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