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의원 평가 1위, 정세균의 오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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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35면

1998년 여름. 입사 2년차의 초년병이던 기자는 ‘98 중앙일보 국회의원 평가’ 작업의 실무 책임을 맡았다. 의원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하며 땀을 흘렸다. 각 상임위 전문 위원, 정부 부처 공무원들과 의원들을 찾아 다니며 동료 의원들에 대한 평가 설문을 돌렸다. 방대한 분량의 국회 속기록을 읽으며 의정 활동을 분석했다. 2개월여에 걸친 지루한 작업을 마치고 의원 299명의 순위를 내기 위해 엔터키를 누를 때의 흥분이 떠오른다. 짠∼. 전체 1위는 이름도 생소했던 국민회의 초선 정세균 의원이었다.

국회 재경위에서 활동했던 정 의원에 대한 평가는 좋았다. 야당에서 여당 의원으로 신분이 바뀌는 와중에 터진 외환위기 속에서 그는 초당적으로 11개 관련 법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주도했다. 국정 감사에서 보여 준 날카로운 비판에 대해 공무원과 다른 의원들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당사자를 승복하게 만든다’며 호평했다. 당시 인터뷰 기사를 보니 그는 “국회의원은 개인ㆍ소속 당의 이해를 떠나 국익에 합치되는 것이라고 판단되면 소신을 굽히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기사가 나간 뒤 그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의 부드러운 미소와 열정에 호감이 갔다.

11년 뒤. 그는 야당의 초강경 투쟁을 이끄는 ‘투사’가 돼 있었다. 22일 미디어법이 통과되던 날 기자는 현장에서 하루 종일 그를 지켜봤다. 수염이 자란 얼굴은 노기(怒氣)로 가득 찼다. 본회의장에서 그는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과 한판 붙을 것 같은 모습까지 연출했다. 그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색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미디어법이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라며 단식을 하고, 의원직까지 던지는 극단적인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기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98 국회의원 평가’ 자료를 들춰 보니 흥미로운 인물이 몇 명 더 있다. 초선 의원이던 김문수 경기지사도 ‘베스트 20 의원’이었다.

그해 가을 우연히 그가 누군가와 심하게 다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국회 복도에서 고성이 들려 달려가 보니 김문수 의원이 예산처 직원에게 격렬하게 항의를 하고 있었다. 방과후 결식 아동에게 책정된 예산이 날아갔다며 그는 분을 참지 못했다. 거칠었지만 서민에 대한 그의 애정과 순수함 같은 게 느껴졌다. 그는 당시 의원 평가에서도 동료 의원들이 주는 점수가 유난히 높았다. 동료 의원들은 환경노동위 소속이던 그에 대해 ‘공익 관점에 입각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졌다’고 평했다. 투박했지만 순수했던 당시의 모습과 정부의 수도권 정책 등을 맹비난하는 지금의 독설가 이미지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재오 전 의원도 ‘베스트 20 의원’이었다. 지금은 ‘막후 실력자’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있지만 이 전 의원은 초선 시절 행정자치위원으로 모범적인 의정 활동을 했다. 관련 집단 평가에서 그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었다.

세월이 흐르면 자연도 사람도 변한다. 위치나 직책이 바뀌면 입장도 달라질 수 있다. 그래도 우리 가끔은 초심(初心)을 생각하면서 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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