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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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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원제 Who Are We?, 새뮤얼 헌팅턴 지음
형선호 옮김, 김영사, 528쪽, 1만9900원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은 『제국의 선택』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역사의 종말』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과 한 묶음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진영의 거물이고, 국가주의 확신범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그래서 『제국의 패러독스』의 조셉 나이 같은 국제주의자 그룹과 달리 탄력성이 없다. 어쨌거나 책의 키워드는 미국 국가주의이고, 책 전체가 ‘국가주의 부활의 찬가’로 읽힌다.

보수주의의 원조 헌팅턴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금 미국은 두 개의 국가로 분열될 위험에 처해 있다. 건국 이래 미국적 신념에 충실한 전통적 미국이 한 편에 있고, 이것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해체주의 흐름이 또 다른 ‘이상한 국가’를 세우려한다는 것이다. 헌팅턴식 처방은 이렇다. “WASP(백인 앵글로 색슨 개신교도)의 부활을 통해 위대한 국가주의 전통을 재건하자.”

그는 서문을 통해 이 책을 “애국자이자 학자”의 입장에서 썼고 “미국의 단결과 강력함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8쪽)고 털어놓는데, 그러고 보니 이해가 된다. 책 출간 전부터 일었던 비판의 목소리 말이다. 미국적 신념에 대한 헌팅턴식 확신은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와 한 묶음으로 비춰졌다. 영국의 가디언과 이코노미스트가 각기 비판의 글을 싣고, 심지어 ‘포린 폴리시’도 헌팅턴 논리에 숨어있는 “뻔뻔스러운 인종주의”를 지적한 바 있다.

우선 헌팅턴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그가 말하는 미국적 신조(American Creed)란 제퍼슨 이래 미국 사회의 신념 체계다. 개인의 존엄성, 기회 균등, 개인주의, 자유와 정의 등이 그것이고, 이민의 물결 속에 미국 사회를 단결시켜왔던 힘이다. 미국적 신념의 피크는 1961년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역설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이었다.

문제는 바로 그 무렵 해체주의가 스며들었다(180쪽). “미국은 공통의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국가 공동체가 아니라 다양한 인종·민족 문화로 이뤄진 집합체”임을 주장하는 다문화주의 등장이 그것이다. 비유컨대 미국은 용광로가 아니라 샐러드 그릇이라는 얘기인데, 영어 외에 스페인어 등 이중언어 옹호, 흑인에 대한 차별수정정책 등이 그 사례다(이 대목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포함한 다(多)문화주의자들을 거듭 비판한다).

헌팅턴은 앞으로 인류 분쟁은 이질적 종교 문명권들 사이의 싸움이라고 주장하며 이슬람과 중국을 ‘잠재적 적’으로 설정했던 인물. 그게 『문명의 충돌』의 논리라면, 이번에는 미국 사회를 도마에 올려놓고 국가주의의 이름 아래 다문화주의를 경계한 셈이다. 1970년대 한국의 ‘국민 총화’ 냄새가 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호불호를 떠나 미국의 ‘원조 보수주의자’의 속내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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