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사연 심층분석]여당행 의원들 탈날까 탈당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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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4월부터 이어지는 정계개편의 이면에 정치인들의 당적 변경을 둘러싼 거래가 있다는 의문이 퍼져 있다.

한나라당은 "야당 탈당인사들의 전후사정을 살펴보면 이권보호.비리조사면제.자리보장 등의 특혜제공이 있었다" 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여권과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정국안정과 지역발전, 동서화합' 등을 탈당명분으로 내세우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당적 변경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들에 대한 개별취재를 통해 전후사정을 점검해봤다.

◇ 기업경영 관련 = 여당에 입당한 기업가 출신 의원들은 야당 시절 부도가 났거나 경영난에 시달렸던 공통점이 있다.

이들중 일부는 여당으로의 변신 후 금융기관으로부터 신규대출을 받았고, 일부는 화의인가를 받았거나 추진 중이다.

김명섭 (金明燮) 의원은 당초 여당으로의 변신에 소극적이었으나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는 "가족회의에서 '회사를 살려야 한다' 고 결론이 났다" 고 그를 만류한 동료의원에게 말하고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구주제약의 주거래은행인 기업은행 신길지점 관계자는 "탈당을 전후해 여섯차례의 신규대출과 당좌대출 상환연장이 이뤄졌다" 고 밝혔다.

구주제약은 97년 생산의약품 부적격 판정과 일부 생산약품 가격의 강제인하조치 등으로 타격을 받아왔다.

오장섭 (吳長燮) 의원이 이사로 있는 대산건설은 충남 금융권에 따르면 97년말 부실여신이 2백52억원에 달했고 한나라당 대선 패배 다음날 주거래은행인 농협 예산지점 등에 돌아온 어음 18억원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다.

吳의원은 자민련 입당후 화의인가를 적극 추진, 6월 3일 홍성지원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가 충남지역 건설업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화의인가가 난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김인영 (金仁泳) 의원도 그가 대표로 있으며 약품도매업을 하는 인영약품이 올해초 경영난을 맞았다.

그러던 金의원은 한나라당 경기도지사후보 경선을 한 4월 28일 탈당했다.

당시 金의원은 경기도지부장이었다.

인영약품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 수원지점 관계자는 "지난 4월과 6월에 각각 수억원 규모의 신규대출이 있었다" 고 말했다.

서한샘의원은 자신의 당적 변경이 사업 때문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경우다.

그의 측근은 "서의원이 탈당 직전 '국회 건교위원이 되는 것과 사업을 살리기 위해 탈당키로 했다' 고 말했다" 고 밝혔다.

서의원의 다솜방송은 3월 5일 부도가 났으며 그는 국민회의 입당후인 5월 12일 화의를 신청한 상태다.

그의 측근은 "서의원은 화의인가를 전제로 지난 8월초부터 35억원 가량의 신규대출을 추진 중" 이라고 말했다.

이강희 (李康熙) 의원은 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경인항운노조가 인천항의 하역권을 독점하고 있으며 정부는 노조에 근로자 임금을 고시하는 등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힌 바 있다.

◇ 비리연루 관련 = 서정화 (徐廷華) 의원은 지난해말 인천지역의 한 건설업체에 대한 대출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현지에 퍼져 있다.

이와 관련, 퇴출된 경기은행 관계자는 "徐의원이 평소 우리은행과는 거래가 없는 모 건설회사에 수십억원의 대출을 해주도록 압력을 가해 가뜩이나 경영상태가 나쁜 우리 은행이 타격을 받았다" 고 말했다.

홍문종 (洪文鐘) 의원은 선거법위반 혐의로 1심에서 벌금 2백만원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는 탈당후 있었던 2심 재판에서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아도 되는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洪의원은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경민학원의 사금고인 경민협동조합 간부가 14억원을 빼돌린 사건 등으로도 어려움을 겪어왔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洪의원의 부친인 홍우준 (洪禹俊) 전의원이 청와대를 방문, 洪의원의 탈당문제를 상의한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노승우 (盧承禹) 의원은 한보로부터 국감질문 무마조로 1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도중에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김종호 (金宗鎬) 의원은 동아건설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비리혐의가 있었으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자민련 관계자는 "金의원의 혐의가 드러나자 당지도부가 金의원이 가장 먼저 한나라당을 탈당한 '공로' 가 있음을 들어 여권 요로에 사법처리불가 주장을 개진했다" 고 말했다.

차수명 (車秀明)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재정위원장을 맡는 바람에 대선자금 모금 간여설이 나돌아왔다.

이성호 (李聖浩) 의원은 96년 11월 구속,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부인 박성애씨가 지난 2월 가석방된 후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朴씨는 안경사협회로부터 1억7천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서한샘의원은 그가 경영하다 부도가 난 한샘출판사의 '97수능골드언어실전' 등의 책이 부교재로 채택되도록 하기 위해 학습지 판매업자가 5천여만원을 교사들에게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 자리제공 관련 = 박세직 (朴世直) 의원은 김종필 (金鍾泌) 총리의 추천으로 2002월드컵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일부 의원들은 주변 인사들에게 여당측과의 입당교섭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있는 상임위 배정을 희망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오장섭 의원은 건교위에, 약사 출신인 김명섭 의원은 보건복지위에 각각 배정됐다.

김인영 의원은 재경위원에 임명된 것 외에 정보위원장직을 '보너스' 로 받았다.

서정화.정영훈 (鄭泳薰) 의원도 경합이 치열했던 건교위에 배정됐다.

탈당의원들은 대부분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각종 요직에 기용되는 푸짐한 당직보상을 받기도 했다.

국민회의로 간 서정화 의원은 부총재, 이성호 의원은 당무회의 부의장에 기용됐고, 자민련은 김종호.박세직.이택석 (李澤錫) 의원을 부총재에, 이완구 (李完九) 의원을 사무부총장에 각각 임명했다.

李의원의 경우 자민련 청양.홍성지구당 위원장이었던 조부영 (趙富英) 대한주택공사 사장이 강력히 반발하자 자민련은 이 지구당을 사고당부로 지정하기도 했다.

자민련에 입당한 차수명 의원은 "당직개편때 정책위의장에 기용될 것이라는 언질을 받았다" 고 말했다.

권정달 (權正達) 의원의 경우 부인과 함께 청와대에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을 만났다.

최근 權의원은 경북도청의 안동 유치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어 유치경합을 벌였던 구미시와 경주시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자민련측 관계자는 "입당교섭이 진행중인 한나라당 중부권 출신 모의원의 경우 탈당 대가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요구해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고 말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기획취재팀 김교준.유광종.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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