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미국서 소개한 납치협상전문가 접촉도 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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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국회 김선일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上)과 AP통신 서울지국 서수경 기자가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고 김선일씨 납치 여부를 외교통상부에 문의한 AP통신 기자는 1명이 아니라 3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AP 측의 전화를 받은 외교부 직원은 지금까지 알려진 공보관실의 정우진 외무관 1명이 아니라 복수일 가능성이 커졌다. 자체 진상조사 발표 때 '전화를 받았다고 신빙성 있게 진술한 외무관은 1명뿐'이라고 했던 외교부에 대해선 불성실 조사 혹은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30일 국회에서 있은 '김선일씨 사건 청문회'에서다.

또 김선일씨 납치 테이프가 공개된 직후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외교 채널을 통해 이라크 납치 협상 전문가를 정부에 추천했으나 정부는 당사자와 접촉을 못 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 은폐했나=AP통신의 서수경 기자는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내가 정우진 외무관과 통화한 것 외에 회사 동료인 최상훈.이수정 기자도 외교부에 문의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전화를 받은 외교부 직원은 내게 '(AP통신으로부터) 두번째로 문의를 받는다'고 했다"면서 "최상훈 기자가 내게 'APTN(AP통신의 텔레비전)의 비디오 내용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 취재 전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 외무관은 "서 기자와는 통화했지만 최상훈 기자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증언해 외교부 안에 다른 직원이 AP의 전화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논란이 일자 특위는 청문회장에 있던 최 기자와 이 기자에 대해 참고인 증언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특위는 다음달 2일 속개될 청문회에 그들을 증인으로 출석시키기로 했다.

◇외교부 해명=신봉길 외교부 공보관은 별도 브리핑에서 "지난 6월 24일 오후 3시쯤 AP 뉴욕 본사의 홍보책임자가 자신의 명의로 e-메일 성명을 보내 'AP 서울지국의 기자 한명이 외교부 직원 한명에게 김선일씨 피랍 사건과 관련해 전화 문의를 한 적이 있다'고 발표했었다"며 "오늘 AP 기자가 국회 청문회에서 '3명의 기자가 전화했다'고 한 것은 이 같은 설명과는 배치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문제의 6월 3일 AP 측에서 외교부에 걸려온 전화는 모두 4통이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AP는 당일 공보관실 정우진 외무관과 5분1초, 부대변인실 비서와 11초간 통화했으며 북핵외교기획단 대표 전화와 여권과 자동응답 전화에 각각 전화했었다"며 "이는 국회 국정조사 특위가 KT 통화기록 등을 바탕으로 확인한 것이며 휴대전화 통화는 배제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이날 AP가 김씨 피랍 여부를 물은 전화는 정 외무관에게 건 한 통뿐이며, 나머지 3통은 해당 부서의 성격 등으로 미뤄볼 때 김씨 피랍과는 무관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협상 전문가 접촉 실패=김선일씨 납치 테이프가 언론에 공개되고 8시간쯤 지난 뒤인 지난달 21일 오후 1시쯤 미 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우리 정부 관계자에게 중요한 제안을 했다. "이라크 내 영국인 성직자 W씨에게 긴급히 연락을 취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주장했다.

박 의원은 "외교부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미 정부 고위 관계자는 'W씨는 미국과 영국 정부가 인정하는 납치 협상 전문가로 조속히 접촉해 보라'고 조언했다"며 "이에 따라 외교부가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W씨는 이라크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화해를 위한 국제본부'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외교부 문서를 본 직후인 지난 28일 W씨에게 e-메일을 보냈더니 수시간 뒤에 '한국 정부의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는 답신을 보내왔다"며 "정부가 안일하게 대처했다"고 주장했다.

◇미, 구출작전 준비 권고=김선일씨 납치 사실이 알려진 직후 미 DIA(국방부 정보본부)의 인질테러 전문가 B씨 등 미.영의 테러 전문가들은 "납치단체의 성격으로 미뤄 협상을 통해 석방될 가능성이 없으므로 구출 작전을 준비하라"고 제안했다고 박 의원이 전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라크 주둔 미군에 구출 작전을 요청하거나 서희.제마부대로 구출팀을 편성하지 않았다.

이철희.김정하.박신홍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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