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세계문화엑스포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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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98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새로운 천년을 향한 촛불을 밝혔다.

축제는 세상 파란을 잠재우고 사람을 편안케 해준다는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 (萬波息笛) 이 울려 퍼진 동해 바다 감포 문무대왕 수중릉의 고유제로부터 시작됐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이 사후 해룡 (海龍) 이 되어 아들 신문왕에게 보내준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이 피리는 경주를 벗어나면 소리가 나질 않는다고 한다.

만파식적으로 상징되는 경주문화엑스포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세계 6대주 48개국이 참가한 행사의 볼륨도 그렇고 내용도 문화의 세기들이 될 새 천년을 위한 보편적 가치와 보편적 윤리를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이 축제는 세계가 지금 갈망하고 있는 마음의 평화와 인생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전시의 하일라이트는 세계문명관의 7백여점 (진품3백65점) 유물 전시다.

인류4대 고대문명인 황하 (중국).간지스 (인도).나일 (이집트).메소포타미아 (중동) 와 중남미 잉카.마야문명유물을 한데 모은 이 전시는 새로운 인류문명 건설을 위한 온고지신 (溫故知新) 을 일깨운다.

북한관의 고구려 벽화 60점 (모사품) 도 눈여겨 볼만하다.

공연으로는 '처용마당' 과 '백결공연장' 에서 1일 2~4회씩 공연되는 세계민속제와 음악축제가 중심축이다.

27개국 48개 단체가 출연하는 세계민속축제는 이밖에 세계 풍물광장 무대.거리 퍼레이드.야외특설무대 등에서도 공연된다.

모든 공연은 인류의 대립과 갈등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화합의 마당을 마련하고자 한다.

'새 천년의 미소관' 에서 펼쳐지는 백남준씨등 국내외 작가 14명의 멀티미디어 아트쇼는 '미소의 저편' 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미래 지향성을 과시한다.

한 바퀴 대충 돌아보는데 6시간이 걸리는 경주문화엑스포는 실속면에서도 챙길 만 한게 많다.

'세계풍물광장' 은 30개국이 참가 전통음식.민예품등을 전시 판매한다.

따라서 경주문화엑스포는 볼거리.먹을거리.살거리 (쇼핑)가 풍성한 이 가을의 세계관광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아쉬운 점은 새로운 인류문명 창조에 하나의 불씨가 될 옛 한국의 삼국문화중 신라.고구려만 있고 백제관이 없다는 점이다.

또 한가지는 인종과 언어.풍속.지역의 차별이 인정되면서도 하나로 화합하는 지구 공동체, 즉 '다수로 이루어진 하나 (E Pluribus unum)' 를 지향하는 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 의 의미가 아직 깊히 천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11월5~7일 열릴 학술회의와 세계문화선언등을 통해 화랑의 풍류도 (風流道) , 원효의 화쟁 (和諍) 과 무애, 동학의 인내천 (人乃天) 등을 거론한 정도다.

이 행사는 앞으로 국가 차원, 나아가 한.중.일 동북아 3국 공동주최로 발전시켜 새 천년 문화의 세기들을 이끌 등불이 되어봄직도 하다.

이은윤<본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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