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그림자 '로드메니저'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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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스타 대열에 합류한 연예인에겐 하루가 30시간이라도 모자란 법. 이보다 2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로드매니저' 다.

이들은 스타와 그림자처럼 붙어다닌다.

이들에게 2시간이 더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아침에 집으로 데리러 가야 하고 밤에 귀가하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로드매니저의 개념과 역할을 잘라 말하긴 어렵다.

'로드 (road)'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엔 운전대를 잡는 게 일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매니지먼트가 기업화하면서 매니저 한 사람이 여러 연예인들을 세세히 챙기기 힘들어진데 따른 보완작업이 그들의 몫이다.

탤런트 추상미의 로드매니저 김우진 (27) 씨. 그는 현장에서 늘 긴장이다.

촬영장면을 모니터링하며 이미지를 잡아줘야 한다.

때로 제작진과 마찰이 생길 성 싶으면 나서서 분위기를 누그러뜨려야 하고, 시간이 길어지면 은근히 어필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촬영이 없는 날에도 쉴 수가 없다.

방송사의 드라마.쇼 등의 진행상황을 꿰고 있어야 하며 어떤 프로에 출연하는 것이 최선인지 저울질해야 한다.

요즘엔 매니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넘친다.

매니지먼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서울예술원 이학주 차장은 "명문대 출신은 물론 미국.일본 유학파도 많이 지망해온다" 고 밝힐 정도다.

'엔터테인먼트론' '매니지먼트 경영관계론' '연기자 발굴 및 캐스팅' 등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수료할 수 있다.

'백기획' 'M.T.M' 등 매니지먼트사 공개 채용엔 늘 수십대 일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어찌보면 매니저는 연예인 만큼이나 화려하다.

스타들을 '거느리고' 막대한 수입의 일정 부분을 확보할 수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로드매니저는 다르다.

오히려 어둡다.

보수도 대부분 월급제다.

얼마전 이승연 운전면허 불법취득 사건이 터졌을 때 한 SBS관계자는 모든 잘못을 로드매니저에게 돌렸다.

"로드매니저가 알아서 한 것이지 이승연은 잘 몰랐던 일" 이라는 설명이었다. 오래전 최진실의 매니저였던 배병수씨를 살해한 것도 그녀의 로드매니저였다. 그들은 연기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 생각과 이성친구와 호텔 룸넘버까지…. 이렇게 밀착해 생활하다 보면 마음이 어긋나기도 하고, 특히 몇몇 연예인들은 엉망인 매너로 마음에 상처까지 안긴다.

그래서 '로드' 라는 말에 본능적인 반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도전정신과 인내심은 다른 직업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연기자가 신인일 경우, 로드매니저는 방송국.촬영현장 등을 쉼 없이 다니며 인사해야 한다.

하지만 나중에 연예인이 대성하고 나면 그 보람은 형언하기 힘들다.

김현주의 전 로드매니저인 백기획 김희정 (30) 실장은 "얼마전 영화자막에 현주 이름이 주연으로 나오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고 말했다.

결국 대다수 로드매니저의 꿈은 '로드' 자를 떼는 것. 하지만 "현장을 뛰면서 얻는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는 탤런트 김지혜의 로드매니저 조윤화 (24) 씨의 말처럼 치열한 젊음만이 차지할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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