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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히말라야에 올랐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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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그래서 궁금하다. ‘고미영의 기록’이 아니라 ‘고미영의 이유’가 말이다. 그는 왜 산을 택했을까.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접고 왜 산악인이 됐을까. 목숨까지 걸면서 왜 히말라야에 매달렸을까. “왜 산에 가느냐”는 물음에 그는 “좋으니까 간다”고 답한 적이 있다. 그의 짧은 답은 어째 ‘빙산의 일각’으로 보인다. 물 아래 잠긴, 그의 심연에 놓였던 ‘진짜 이유’는 대체 뭘까.

고미영씨의 꿈은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최초의 여성 산악인’이었다. 23년 전에 그 꿈을 이룬 이가 라인홀트 메스너(65·이탈리아)다. 그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했다. 그래서 고인에게 메스너는 비록 성(性)은 다르지만 ‘살아 있는 이정표’였다.

메스너에게도 낭가파르바트는 ‘뼈아픈 산’이었다. 1970년 함께 정상을 밟고 내려오던 동생이 코앞에서 산사태에 묻혀버린 곳이다. 고씨도 낭가파르바트를 내려오다 1500m 아래로 추락했다. 메스너는 그런 아픔을 딛고서 86년까지 히말라야의 나머지 13좌를 모두 올랐다.

누군가 물었다. “등반이 무엇인가?” 메스너의 답이 걸작이다. “등반은 죽음과 맞서서 얻는 깨달음이다.” 결국 메스너가 찾던 것은 ‘산’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그는 “나는 그저 자연의 최고 지점에서 자신을 체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순간을 메스너는 ‘하얀 고독’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히말라야 등반은 ‘자신의 존재 찾기’였다.

78년 메스너는 산소통도 없이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다. 그러나 메스너는 해냈다. 그리고 “나와 산 사이에 기계장치가 없는 본질적 경험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건 바로 대자연과의 일체감이었다. “왜 나는 정상에 가지 않고선 못 견딜까”라고 스스로 묻고선 “정상이란 산의 꼭대기가 아니다. 하나의 종점이자 모든 곳이 모여드는 소실점, 결국 세계가 무(無)로 바뀌는 곳”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건 구도자의 고백과 무척 닮았다. 인간이 신을 만나는 ‘점’이 바로 히말라야의 꼭대기란 얘기다. 그럼 고인은 어땠을까. 고인도 그 ‘점’을 좇았을까, 아니면 ‘기록’을 좇았을까. 그가 찾던 건 ‘산’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이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내 안의 히말라야’를 꿈꾼다. 다들 그 하나의 ‘점’을 꿈꾼다. 거기서 일상의 스트레스와 삶의 고뇌가 씻겨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물어야 한다. “나는 왜 히말라야를 오르나?”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