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깎아내려야 수도 이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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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멕시코시티.북경보다 못하다?'

29일 서울 지하철 전동차에는 두 종류의 광고물(그림 참조)이 내걸렸다.

한 광고물 삽화는 나귀를 타고 기타를 연주하면서 넓은 사막을 가는 멕시코인을 보여주면서 서울시민은 비좁은 수도권에 갇혀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세계 대도시 가운데 서울의 경쟁력은 30위로 멕시코시티(18위)보다 떨어진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다른 광고물은 중국 베이징(北京)의 천안문(天安門)과 고층 빌딩 앞을 전통 복장의 중국인이 자전거에 어린이를 태우고 희희낙락하는 표정으로 달리는 모습을 담았다. 한쪽에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한국인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삽화 옆엔 '외국기업들이 서울보다 베이징을 선택하는 이유'라는 제목 아래 글로벌 100대 기업의 동북아지역 본부가 서울에는 한개에 불과해 베이징(5개)보다 적다는 도표와 함께 '신행정수도 건설로 서울.수도권을 경제 중심도시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자'는 글이 실렸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국정홍보처가 공동으로 내건 이들 광고물에 대해 서울시가 발끈하고 나섰다.

서울시 박명현 대변인은 이날 "정부기관이 수도 서울을 폄훼한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는 광고를 공개적으로 내건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서울이 베이징이나 멕시코시티보다 못하다는 내용을 광고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서울시는 이날 산하기관인 서울지하철공사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두 광고물을 떼어내도록 지시했다. 광고물을 게재하려면 공사 측의 사전심의를 받아야 하는데도 광고 대행업체들이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두 광고물은 MBC애드컴에 의뢰해 제작한 것으로 광고 대행기관인 언론재단을 통해 8월 1일부터 한달 동안 서울 지하철 1~8호선에 4000여장을 비롯해 부산.대구.인천.광주 지하철에 총 6300여장을 부착키로 했으며 광고비용은 2억원으로 알려졌다.

국정홍보처 관계자는 "제목이 자극적인 측면은 있지만 서울의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며 "광고 문안을 수정할 계획은 당분간 없다"고 말했다.

지하철 광고업자들은 서울 지하철에 28일부터 광고물을 붙이기 시작했으나 서울시가 문제를 삼자 떼내고 있다. 하지만 언론재단 측은 서울 지하철 중 철도청 운행 차량과 다른 지역 지하철 차량엔 예정대로 광고물을 게재할 예정이다.

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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