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데이트] PBA투어 풀시드 딴 첫 한국인 프로볼러 정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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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화 프로가 볼링의 어드레스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 프로무대 도전에 나선 그의 눈빛이 매섭다. [김형수 기자]

프로골프에 PGA가 있다면 프로볼링에는 PBA(Professional Bowlers Association)가 있다. 세계 최고수 볼러 60여 명이 미국 전역을 돌며 펼치는 PBA 투어에 한국 선수가 처음으로 풀시드 출전권을 땄다. 국내와 일본 볼링계를 평정한 정태화(42·DSD한독) 프로다.

정 프로는 PBA의 2009∼2010 시즌 해외 추천 선수로 8월 3일 첫 경기에 나선다. PBA 추천 선수는 유럽 1명과 아시아에서 정 프로뿐이다. 출국을 앞두고 준비에 한창인 정 프로를 만났다.

#금 다섯 돈 상품 따려 맹훈련

정 프로는 중학 시절까지 태권도(4단)를 했지만 전문 선수로 뛰지는 않았다. 볼링은 대학 2학년 때 시작했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들과 술내기를 했는데 110점(300점 만점)을 쳐 꼴찌를 했다. 오기가 발동한 그는 볼링에 매달렸고 대전에서 알아주는 고수가 됐다.

군 복무와 개인 사업을 하느라 볼링에서 떠나 있던 정 프로가 다시 볼링 공을 잡은 것은 29세 때, 집안이 갑자기 기울면서였다. 당시 대전 시내 볼링장에서는 밤늦게 이벤트 대회를 열었는데 1등 상품이 금 다섯 돈이었다. 그는 ‘용돈벌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대회에 참가해 1등을 휩쓸었다. ‘금 모으기’만으로 한 달에 300만원씩 벌었다.

그는 1995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해 대표가 됐고, 97년에는 한국프로볼링협회(KPBA) 3기 프로로 선발됐다. 한국과 일본 대회에서 몇 차례 우승하며 우쭐해 있을 때 대선배인 KPBA 유청희 이사가 불쑥 “볼링 본고장 미국으로 가자”며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99년 유 이사가 사재를 털어 산 중고차로 미국을 누볐다. 한 대회 끝나고 24시간 꼬박 차를 몰아 2500㎞를 달린 뒤 곧바로 경기에 출전하고, 다시 2800㎞를 달려 다음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했다. 정 프로는 “거의 모든 대회에서 예선 탈락했지만 내 한계를 알고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단골 헤어 디자이너를 신부로

정 프로는 올해 화이트데이(3월 14일)에 이윤희씨를 신부로 맞았다. 단골로 다니던 미용실의 헤어 디자이너였다. 6년 동안 사귀면서도 정 프로는 꼭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운명의 사건이 일어났다.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정차돼 있던 차와 추돌했다. 에어백이 터지는 바람에 목숨은 건졌지만 정 프로는 각막을 다쳐 피를 쏟았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이씨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응급조치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정 프로는 ‘이 사람과 평생 같이 있어야겠구나’ 결심을 했고, 서둘러 날을 잡았다. 신부는 지금까지 장난으로라도 볼링 공을 던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정 프로는 올 시즌 목표를 TV 파이널(5명이 올라와 TV로 생중계하는 결승전)에 한 번이라도 진출하는 것으로 잡았다.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낯선 레인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을 제대로 남기겠다는 각오로 나선다. “박세리 키즈들이 LPGA 무대를 휩쓸고 있는 것처럼 저도 후배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습니다.”

정영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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