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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수능 성적 자료 공개하려면 제대로 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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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원자료가 어제부터 국회의원에게 공개됐다. 정부가 1994학년도 수능 도입 이래 16년간 고수해 온 성적 비공개 원칙을 접고, 학부모의 알 권리 충족과 교육 질 향상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공개 방식이 제한적이어서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다. 국회의원이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방문해 컴퓨터로 ‘열람’만 하고 분석·가공 자료는 별도로 평가원에 의뢰해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가원은 심의를 거쳐 문제가 안 될 만한 분석자료만 내주고 학교별 자료 같은 민감한 내용은 공개를 거절할 방침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허울뿐인 공개가 될 공산이 크다.

정부는 수능 성적 자료 공개 목적부터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학력정보 공개를 통해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게 아닌가. 학교가 잘 가르치기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별 학력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전제돼야 한다. 학교 간 학력차가 왜, 얼마나 나는지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그에 걸맞은 처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수능 성적 공개는 정부가 국회에 등 떠밀려 마지못해 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이왕 공개하기로 한 거라면 교육 발전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공개 범위와 폭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게 옳다. 학교별 성적은 공개 안 한다는 방침부터 재고해야 한다. ‘서울이 지방보다 수능 평균이 높다더라’ 정도의 미흡한 정보로는 누구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교별 정보 공개가 이뤄져야 교육 수요자가 학교 선택을 위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학교·교사 간 경쟁이 불붙어 학교 현장에 변화의 바람을 가져올 수 있다.

물론 항간에 고교 서열화 부작용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미 고교별 주요 대학 합격률이 공개되고, 특목고·자사고·자율고·기숙형 공립고 등 학교가 다양해지면서 학교 간 경쟁과 서열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지금 교육당국이 걱정해야 할 건 고교 서열화가 아니라 엄연한 학교 간 학력차를 어떻게 줄여나가느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