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여당 사정 '칼' 마땅한 대응책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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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인에 대한 사정이 본격화하면서 정치구도가 어느새 여대야소 (與大野小) 로 바뀌었다.

사정바람이 워낙 드세다 보니 한나라당의 '야당의원 빼가기' 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검찰의 정치권 사정에서 태동된 이 바람은 '비리 정치인 퇴출' 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돼 있다.

게다가 그 겨냥점이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라는 점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여권 수뇌부도 이 점을 잇따라 천명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4일 야당 의원 영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국민회의 지도부는 연일 야당 총재에 대해 공개적으로 칼날을 들이밀고 있다.

3일 정동영 (鄭東泳) 대변인이 李총재를 향해 '국세청의 대선자금 모금사실 인지 (認知)' 여부를 공개질의 형식으로 공격한 데 이어 4일 조세형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공개질의에 답변하지 않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인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고 지적했다.

鄭대변인은 "李총재의 개입사실이 확인되면 국민들은 정치개혁 차원의 인적(人的) 청산 대상으로 생각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여권은 세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것 같다. 4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는 여권이 ▶새로 출범한 李총재의 이미지를 실추시켜 야당을 무력화하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비자금 공세를 사전 차단하며 ▶경제난국에 대한 여권의 실정 (失政) 을 비켜가려 한다는 보고가 나왔다.

그러나 마땅한 대응책을 찾기 어렵다는 게 한나라당과 李총재의 고민이다. 추가 탈당 논의는 당내에서 이제 감출 일도 아닌 게 됐다.

수도권과 강원.영남, 민주계와 과거 민정계 등 탈당 예상자가 종횡 (縱橫) 으로 얽혀 있다. 자신을 아예 탈당파라고 반공개적으로 떠들고 다니는 의원도 있다.

내부 균열도 감지된다. 신임 당직자 인선을 놓고 '이회창 친위부대의 전면포진' 이라는 반발이 있다.

李총재는 일단 화전 (和戰) 양면 전략을 택하고 있다. 여야 대치가 격화되던 지난 임시국회 마지막 날 (2일)에도 민생관련 법안은 군말없이 통과시켜 줬다.

李총재는 거듭해서 "과거 야당과는 다르다. 도울 건 돕고 따질 건 따진다" 고 한다. 대여 (對與) 메시지처럼 들린다. 그러나 대선자금 부분에 대해선 단호하다. "여당것도 밝혀라" 고 형평성문제를 제기하면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자세다.

李총재는 총재 취임사에서 '필사즉생 (必死卽生)' 이란 말을 했다. 여권의 야당 의원 영입과 사정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공동여당 내에서는 목표 의석을 1백60석 정도로 잡고 있다. 앞으로도 10여명을 더 영입하겠다는 얘기다.

이 목표가 달성될 때쯤이면 정치권 사정도 어느 정도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는 경제.방송청문회가 기다리고 있다. 야당으로서는 반격의 소재와 기회를 포착하지 않는다면 계속 수세 (守勢)에 몰리는 힘든 가을이 될 것 같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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