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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환율제 '배수진' 친 말레이시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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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마지막 카드' 를 꺼냈다.

금융시장 개방을 포기하고 사실상 고정환율제 채택.외환거래 통제 강화를 선언한데 이어 2일 링깃화 가치를 달러당 3.80에 고정해 이를 즉각 발효시켰다.

마하티르가 내건 정책 요지는 간단하다.

외환거래를 엄격히 관리함으로써 환투기 광풍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시아 위기의 간접 피해국인 대만.홍콩 등 주변국들은 조심스러운 '동조' 입장을 표명,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한편 말레이시아 증시의 종합주가지수는 새 외환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해 전날보다 8.9% 오른 286.20으로 수직 상승했다.

◇ 신정책 내용 = 고정환율제 도입과 함께 외환거래를 국내로 제한했다.

게다가 달러로 링깃화를 사는 건 괜찮지만 링깃화를 달러로 바꾸려면 중앙은행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시장가치가 어떻든지 링깃화의 교환비율은 불변이며 환투기는 원천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이를 위해 ^수출입대금 달러결제 원칙^외국자본의 증시 투자자금 1년내 회수불가^주식거래자 실명등록 의무화^국내기업 주식의 해외거래 금지 등 추가조치가 잇달아 터져나왔다.

◇ 배경 = 말레이시아 경제가 회복불능의 침체 국면을 보이고 있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올들어 1분기 마이너스 2.8%, 2분기 마이너스 6.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13년만에 처음으로 경기가 후퇴했다.

게다가 지난해 '국제통화기금 (IMF) 지원 없는 IMF체제' 를 표방하면서 도입했던 긴축정책들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경제 파탄을 막기 위해선 ^금리 인하^유동성 증대^소비분야 여신증가.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수요 유발 등 '반 (反) IMF식 처방전' 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됐다.

◇ 예상되는 부작용 = 당장 경제를 돌리는데 필요한 달러를 해외에서 구할 길이 막연해졌다.

게다가 건전한 해외투자까지 줄어들 위험이 크다.

외국 채권은행들로부터 상환만기일을 연장받기도 어렵게 됐다.

링깃화의 해외거래가 원천적으로 금지됨으로써 경쟁력이 크게 위축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투자분석회사인 드레스터 클라인 보르트의 수석연구원 조프리 바커가 "이는 마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무모한 행위" 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주변국 동향 = 홍콩.대만.싱가포르 등의 반응은 엇갈린다.

홍콩 금융관리국은 마하티르의 발표 직후인 2일 "불법 통화선물 거래자를 색출해 처벌하겠다" 고 밝힘으로써 마하티르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만 중앙은행의 조우허딩 (周何定) 외환국장도 "대만달러 가치를 유지하고 금리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환투기를 막아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 라며 마하티르를 은근히 두둔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인해 직접 타격을 받게 된 싱가포르는 "장기적으로 싱가포르 증시가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 고 우려했다.

홍콩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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