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교단 혁명’ 중인데 … 교원평가제 10년째 허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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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목동의 한가람고는 13년째 전교생을 대상으로 수업만족도 조사를 통해 교원평가를 하고 있다. 사진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만족도 설문지를 작성하는 모습. [한가람고 제공]

정부가 2000년부터 도입을 추진한 교원평가제가 10년째 겉돌고 있다. 교원평가제는 교사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부적격 교사를 걸러내기 위해 미국·일본 등 대부분 선진국이 실시하는 제도다. 하지만 한국은 교원단체가 반발하자 국회의원들이 눈치를 보며 입법을 미루고, 정부도 국회 탓만 하며 뒷짐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는 ‘교단 혁명’ 중인데 우리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교원평가제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교원평가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본지가 최근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의원 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18명 전원이 제도 도입에는 찬성했다. 그러나 핵심인 평가 결과 인사 반영 문제는 같은 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한나라당 7명과 민주당 3명, 친박연대 1명 등 11명이 인사 반영에 반대했다. 찬성은 한나라당 5명과 민주당 1명, 선진과 창조의 모임 1명 등 7명이었다.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은 “인사에 반영하지 않는 교원평가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평가 결과를) 인사에 반영하면 교원의 자율성이 위축돼 학생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도 “인사 반영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 가물가물=교원평가제 법안은 25일 끝나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돼야 일정상 내년 3월 전면 시행에 차질이 없다. 법안 통과 후 3개월간 입법예고와 관계 부처 협의, 시행령 준비, 16개 시·도교육청에 세부안 통보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9월 정기국회에서는 법안 심사가 많지 않아 이번이 마지노선”이라며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법안을 통과시킬지에 대한 의원들의 입장도 차이가 많았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킬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12명(한나라당 11명+친박연대 1명)이 “있다”고 답했다. 12명은 내년 3월 전격 도입에도 찬성했다. 반면 이상민 ‘선진과 창조의 모임’ 의원과 김춘진 민주당 의원 등 6명은 “검토가 더 필요해 통과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18명 전원이 제도 도입에 찬성했지만 실제로는 이견차도 좁히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한 것이다. 실제로 올 4월 국회 교과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한나라당이 관련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킨 후 후속 절차를 논의할 상임위가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이에 따라 미디어법 등을 두고 여야가 첨예 대립 중인 이번 국회에서 교원평가제 법안 통과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회와 정부가 말로만 교원평가제 도입을 외칠 뿐 실질적인 노력은 않고 있다”며 “교단 개혁이 늦어지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선 교원평가 당연=영국은 학교가 교장이나 수석교사로 평가위원단을 구성해 1년에 한 번씩 교사평가를 의무적으로 한다. 평가 결과는 승진이나 보수에 직접 반영 한다.

미국도 대부분의 주가 초임 교사는 최초 3년간 매년, 3년 이상 경력 교사는 3년에 한 번 평가한다. 평가 결과는 승진과 성과급에 반영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학업 성취도가 나쁜 공립학교 5000곳을 폐쇄하도록 하는 등 공교육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이종찬 기자, 김경원·하태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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