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큰 뱀 악몽’ 심리치료로 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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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엘리트 선수들이 경기력 향상과 안정을 위해 스포츠심리학의 도움을 받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심리기술훈련, 심리상담, 심리치료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본질은 과학적인 진단과 평가 및 측정을 통해 선수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조언과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윤영길 교수(右)가 경기도 고양시 국민은행 연수원에서 국민은행 축구선수들을 대상으로 심리기술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고양=김성룡 기자]


#유소연 상반기 3승의 비결

프로골퍼 유소연(19·하이마트)은 5월 초 서울 삼성동의 조수경 스포츠심리연구소를 찾았다. 조 소장은 2시간이 넘는 심리테스트를 한 뒤 ‘인지 재구성’이라는 기법의 심리기술훈련을 시작했다.

유소연의 문제는 ‘나는 슬럼프’라고 느끼는 상황에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엘리트 코스를 달리다 지난해 친구 최혜용에게 신인왕을 뺏기고, 올해 초반에는 서희경에게 밀렸다. ‘이게 내 한계고 실력이구나. 여기서 끝나는 건가’ 하면서도 짐짓 밝고 자신감 있게 행동했다. 유소연은 “욕심이 많다”는 얘기도 자주 듣는데 그 욕심이 자신감이 아니라 불안감으로 전이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 소장과 유소연은 불안감이 형성되는 과정을 찬찬히 짚어보고, 불안이 만들어내는 나쁜 습관과 생각을 고쳐 나갔다. 유소연은 주 1회 꼬박꼬박 조 소장을 찾았고, 경기 전날에는 전화로 전략을 상의하기도 했다. 유소연은 “걱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심리상담을 하고 나면 마음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경기 중에는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기술적인 면에만 집중하라는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유소연은 5월 24일 두산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이후 2개 대회를 더 석권해 상반기 3승을 거뒀다.

#FC 서울도 국민은행도 ‘효과 톡톡’

실업축구 국민은행 선수들은 지난해 8월부터 주 1회 고양 국민은행 연수원에서 심리상담 시간을 갖고 있다. 강사는 축구선수 출신인 한국체대 윤영길(스포츠심리학) 교수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은퇴 후 인생설계’ 강의를 진행했다. 윤 교수는 “축구선수들은 지능이 떨어진다는 열등감을 갖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학습지능을 빼고는 창의력, 사람 사귀는 능력 등이 뛰어나다. 특히 어떤 일을 해결해 나가는 능력(성공지능)은 월등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감을 갖고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체육인재육성재단 등 은퇴선수 특별교육과정을 갖고 있는 단체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김요환 선수는 “은퇴 후 뭘 할까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정리가 된 느낌이다. 선수는 심리적으로 편안해져야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개인 면담을 통해 선수들의 심리적 문제점을 찾아내고 처방도 해준다. 국민은행은 지난 연말 선수 절반을 내보내고 새 선수를 받았다. 올해 초반에는 고전했지만 지난달 내셔널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프로축구 FC 서울도 귀네슈 감독의 요청에 따라 지난해 인하대 김병준(스포츠심리학) 교수를 심리치료사로 초빙했다. 서울은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고, 올 시즌도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정영재 기자, 이정찬 인턴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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