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뉴스 <29> 북극에 뛰어드는 국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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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덕 기자

주변국가간 북극 국경 협약 없어 분쟁 소지

북극은 최근 지구온난화로 곳곳에서 빙하가 녹아 내리면서 바다 밑에 묻혀 있는 자원 개발이 점점 더 쉬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주변국가들이 저마다 소유권을 주장하며 본격적으로 자원개발에 뛰어들 태세다. 그러나 북극해에 인접한 국가들 간에 국경협약이 체결되지 않아 자원개발을 둘러싼 분쟁 위험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북극해는 현재 1982년 제정된 유엔해양법에 따라 해역에 대한 개별 국가의 주권은 인정되지 않고, 인접국들의 200해리(370㎞) 경제수역만 허용되고 있다.

북극해 아래 자원의 보고인 대륙붕의 크기는 서유럽 면적과 맞먹는다. 북극권 미발견 석유에 대해 포괄적인 평가작업을 벌인 지질학자들은 북극해 밑에 900억 배럴의 원유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극 해저에 국기 꽂은 러시아 “전쟁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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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0년까지 자국의 안보 위협을 분석한 문서를 최근 공개하면서 북극에 매장된 에너지를 둘러싸고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 전략 문서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러시아의 공식 입장이다. 문서는 러시아의 북극해 국경지역 인근 해저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막대한 양의 원유와 가스전 소유권에 대한 치열한 다툼이 향후 10년 안에 잠재적인 군사 충돌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북극해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해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을 부당하게 탐낸다고 비난했다. 푸틴은 “많은 분쟁과 외교정책, 그리고 외교적 움직임들에서 가스와 석유 냄새가 난다. 그 이면에는 종종 불공정한 경쟁을 촉발하고 우리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안보회의를 이끌고 있는 니콜라이 파트루셰프는 러시아 국기를 꽂기 위해 북극으로 직접 날아갔다. 그는 푸틴이 대통령이었던 시절 연방보안국(FSB) 국장을 지낸 권력 실세다. 파트루셰프는 북극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2004년 특별북극이사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크렘린이 북극 특별대표로 임명한 아르투르 칠링가로프는 2007년 탐험단을 이끌고 미니 잠수함을 동원해 북극 해저에 티타늄으로 만든 러시아 국기를 꽂았다. 로모노소프 해령(해저 산맥)에 대한 러시아의 권리를 주장하는 선언이었다.

러시아는 로모노소프 해령이 러시아 영토의 연장부라고 보고 있다. 이를 토대로 120만㎢에 달하는 북극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러시아는 2001년 유엔에 로모노소프 해령에 대한 영유권을 허용해 달라는 요청서를 냈으나 기각당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러시아는 유엔이 요구한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이후 로모노소프 해령에 대한 탐사를 벌여 왔다. 로모노소프 해령이 시베리아 대륙과 대륙붕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증명할 자료를 수집해 유엔에서 러시아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미국·캐나다 등 러시아 움직임 적극 견제

발 빠르게 움직이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노르웨이·캐나다·덴마크가 북극해 대륙붕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덴마크는 2년 전부터 북극해의 로모노소프 해령 인근 심해 조사를 벌여 왔다. 덴마크 정부는 “로모노소프 해령에 대한 영유권 획득을 위해 2014년 유엔에 제출할 자료를 마련하는 게 탐사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캐나다는 북극점 여행의 전초기지인 레졸루트 베이와 버핀섬에 혹한 전투훈련소를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2000만 달러(약 256억원) 규모였던 북극해 해저지도 제작 예산도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미국은 북극해 해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자료를 축적하기 위해 5년째 해저 지형을 탐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독립을 앞두고 자치권이 확대된 북극 섬 그린란드도 북극 자원 쟁탈전에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300년 가까이 덴마크의 지배를 받아온 그린란드는 지난해 11월 자치권 확대안을 통과시켜 최종 목표인 ‘분리·독립’으로 가는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확대된 새 자치권에 따라 그린란드는 북극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외교·국방권은 아직 덴마크에 남아있지만 북극권과 유럽연합(EU) 간의 관계에서는 제한적인 외교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북극 자원 전쟁의 ‘복병’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토의 85%가 얼음인 그린란드의 만년빙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가스·금·다이아몬드 등 천연 자원이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 온난화로 석유·가스 등이 가장 많이 매장돼 있는 동쪽 만년빙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는데, 주요 산업인 수산업의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덴마크 오르후스대 그린란드 정치 전문가인 라흐스 호브바크 소렌센 교수는 “정치권은 국가 경제 수익구조를 다양화하고, 덴마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만년빙에 눈을 돌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원 개발이 시작되면 이곳 천연자원을 노리고 있는 선진국들의 투자도 러시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달 3일 30여 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이누이트 아타카티기이트(IA)’당은 경제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바탕으로 덴마크에서 완전히 분리·독립하는 시점을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구촌 최대 청정 섬인 그린란드가 북극권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환경 파괴 등 위험 요소가 적지 않을 것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비즈니스위크는 최근 북극 자원 전쟁과 관련, “그린란드가 독립을 앞당긴다는 명분으로 환경을 파괴한다면 그 대가는 엄청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4~2008년 살펴보니
북극해 얼음, 알래스카 크기만큼 사라지고 67㎝ 얇아지고

지구 온난화로 북극해 얼음의 두께가 급속도로 얇아지고 있다. 2004년부터 북극해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으면서 오래된 두꺼운 얼음이 사라지고 여름철이면 녹는 얇고 새로운 얼음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고 미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이 최근 발표했다. 이런 추세라면 북극 빙하 아래 묻혀 있는 자원 개발도 한층 쉬워질 전망이다.

NASA의 아이스샛 위성 측정 자료에 따르면 2004~2008년 사이 겨울철 북극해의 다년빙은 57%나 줄어들었다. 북극해 얼음이 줄어든 면적은 알래스카 면적과 비슷한 약 150만㎢나 됐다. 이 기간 북극해의 얼음 두께는 네 번의 겨울을 지나면서 67cm 줄었다고 NASA 연구진이 지구물리학저널 해양편에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북극해를 덮고 있는 얼음 면적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위성 측정 결과 두께 또한 얇아져 북극해 얼음의 부피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2003년까지만 해도 북극의 얼음 총량 가운데 62%가 다년빙으로, 나머지 38%가 그해에 새로 언 초년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난해는 거꾸로 초년빙이 68%를 차지하고 다년빙의 비율은 3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년빙은 여름철에도 녹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두께를 더해 가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 방지에 있어서 초년빙보다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우리는 얼음의 면적이 얼마나 사라졌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며 “이런 변화는 지구 온난화와 해빙 순환 이상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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