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23>김현승, 커피와 고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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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10면

시인 김현승

김현승의 아호(다형·茶兄)에는 차를 뜻하는 ‘다’자가 들어 있다. 김현승에게 차는 두말할 나위 없이 커피다. 김현승은 열두어 살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으니 그의 커피 역사는 꼭 반세기에 이른다. 취미 삼아 혹은 습관적으로 마신 게 아니라 커피는 김현승에게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40대까지만 해도 하루 몇 차례씩 서너 잔 분량의 사발에다 커피를 타서 마셨다. 1913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현승은 목사였던 부친이 광주광역시에서 목회활동을 했던 까닭에 광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의 집에 기숙하던 서양 선교사들이 다량의 커피를 가져다 놓고 마실 때마다 늘 얻어마신 게 시작이었다.

커피를 마신 역사가 그토록 오랜 만큼 김현승은 커피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커피에 대해서만은 ‘절대적 권위’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거의 ‘독재’라고 할 정도였다. 가령 그의 집에 손님이 찾아가면 으레 커피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손님의 취향을 물어 커피와 설탕과 크림의 양을 조절하는 게 보통이지만 그는 언제나 자기 방식대로 커피를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한다. 그 커피가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마시는 사람의 미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뿐 자신이 만드는 커피는 가장 이상적이며 전혀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커피와 관련해서 김현승에게는 또 하나의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매일 아침 여름철엔 일곱 시쯤, 겨울철엔 여덟 시쯤이면 반드시 집 근처의 다방에 나가 좋아하는 종류의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었다. 아무도 없는, 음악도 없는 드넓은 공간에 호올로(김현승은 ‘홀로’를 꼭 이렇게 썼다) 앉아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명상에 잠기면 이때가 자신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쾌적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손님이 하나둘씩 들기 시작하면 그는 다방을 나선다.

이런 습관은 ‘견고한 고독’(68년) ‘절대 고독’(70년) 등 김현승 말년의 시에서 주조를 이루는 ‘고독’과 무관하지 않다. 일찍부터 고독을 동경하고 고독을 사랑했던 그는 나름대로 고독을 즐기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 갔고, 커피는 그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그의 시에서 유독 ‘가을’이 자주 등장하는 까닭도 가을이 고독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게 하고, 커피를 가장 맛있게 느끼게 하는 계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가을의 기도’ 마지막 스탠자에서 그는 이렇게 읊는다.

‘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은 1932년 평양의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재학 중 교지에 발표했던 작품이 양주동 교수의 눈에 띄어 그의 추천으로 동아일보에 발표한 것이 시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였다. 그의 시가 발표되자마자 정지용·김기림·이태준 등 선배 문인들이 편지를 보내 격려할 정도로 문단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졸업 후 광주로 돌아와 모교에서 교편을 잡게 된 김현승은 동인지 ‘조선시단’ 등을 통한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시단의 유망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38년 그는 돌연 붓을 꺾는다. 고질인 위장병으로 건강이 악화한 데다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되는가 하면, 함께 갇혔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누이동생이 사망하고 교사직마저 강제로 물러나게 되는 등 불행한 일들이 겹치자 시업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거기에는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내포돼 있었다. 김현승은 해방 후인 46년 숭실중학교 교감에 취임하면서 8년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51년부터는 조선대 교수로, 60년부터는 숭실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김현승은 수많은 문인을 길러냈다. 박성룡·박봉우·이성부·조태일·문병란·손광은·윤삼하·문순태 등 30명이 넘는다. 그의 내면세계는 고독했지만 실생활에는 이 많은 제자 문인들이 그를 두텁게 둘러싸고 있었다. 한때는 문단에서 ‘김현승 사단’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김현승은 75년 4월 11일 저녁 다른 동년배 문인보다는 다소 이른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이는 커피를 너무 좋아해 건강을 해쳤으리라고 봤지만 김현승이 들었다면 펄쩍 뛰었을 소리였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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