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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청주화장장 이용자 42%는 서울·경기 주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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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화장장 신설이 추진되자 이 지역과 인접한 서울 구로구 주민들이 기피시설이란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사진은 16일 구로구 궁동 주택가에 내걸린 플래카드. [조문규 기자]


화장장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서울시립승화원은 적정 처리 용량(63건)을 훨씬 넘는, 하루 평균 135건의 시신과 유골을 처리하고 있다. 화장장은 오후 7시20분까지, 윤달인 요즘은 오후 9시30분까지 가동하고 있다. 화장장을 구하지 못해 4일장이나 5일장을 치르는 경우도 이제는 드문 일이 아니다. 15일의 경우 4일장이 12건, 5일장이 6건이나 됐다.

제때 장례를 치르기 위해 ‘원정 화장’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성남화장장이 처리한 8013건 가운데 서울에 주소를 둔 것이 2834건으로 35%를 차지했다. 올해도 7월 말 현재 서울시민이 2377명으로, 38%를 기록했다. 서울시민이 시립승화원을 이용하면 9만원을 내지만 성남화장장에서는 ‘외지인’이어서 100만원을 지불해야 하는데도 먼 걸음을 하는 것이다. 청주화장장도 사정이 비슷해 청주시·청원군 주민이 37.8%, 수도권 주민이 42.5%다. 경기도 평택에 사는 정시택(71)씨도 이달 초 모친상 때 수원화장장의 예약이 안 돼 청주까지 갔다.

이 같은 현상은 화장률이 증가하는데 화장 시설은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화장률은 2003년 46.4%에서 지난해 62%로, 서울은 61%에서 70%로 뛰었다. 하지만 수도권에 있는 서울(23기)·수원(9기)·성남(15기)·인천(15기) 화장장으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허점을 비집고 신종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기도 고양경찰서는 15일 인터넷 예약 프로그램을 이용해 벽제화장장의 화장 시간을 싹쓸이 예약한 뒤 상조업체와 장례식장에 넘긴 혐의(업무방해)로 서모(37)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서씨 등은 지난해 12월부터 900여 차례에 걸쳐 건당 3만∼7만원씩 받고 30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시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수도권 내 화장장 4곳의 예약을 통합해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장장 신·증설이 아니어서 미봉책에 불과하다. 주민들이 ‘혐오시설’인 화장장 설립을 반대하는 데다 자치단체도 표를 의식해 소신 있게 정책을 집행하지 못한 결과 시민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조성사업으로 화장로 11기와 종합의료시설,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2001년 부지 선정을 끝냈으나 공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주민들이 소송을 내 대법원까지 가는 바람에 사업이 지연됐으나 서울시가 승소해 법적인 걸림돌은 해결됐다”며 “그러나 주민들의 반발이 여전히 변수”라고 말했다.

경기도 내 10개 시·군이 추진 중인 화장장 건립도 벽에 부딪혀 있다. 부천(화장로 6기)·용인(10기)을 제외하고는 부지도 선정하지 못했다. 그마저 부천은 지역 주민과 서울시는 물론 인근 구로구 주민까지 반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그린벨트에 화장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해 줄 것을 국토해양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치단체들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천윤진 서울시립승화원 운영과장은 “승화원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5월 고양시에 협의 신청을 했으나 반려된 상태”라며 “화장로가 고장 나도 교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 경기도는 서울시 등 타 시·도가 도 내에 설치한 주민 기피시설 주변 지역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 지원 사업을 위한 기금을 운영하고, 주민 지원을 위한 자치단체 간 협의를 회피하거나 기피하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제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익진·정영진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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