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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할 땐 따로 따로 닭튀김·수박은 같이 먹고 여야의 국회 코미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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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경원 한나라당 문방위 간사가 16일 “회의실을 열고 미디어법을 토론하자”며 문방위 회의실 앞에서 농성 중인 민주당 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 16일 대한민국 국회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여야 의원들이 함께 본회의장에서 밤을 새웠다. 영화 제목대로 ‘적과의 동침’이다. 지난해 말 민주당이 본회의장을 12일간 점거했지만 여야 동시 점거는 처음이다. 그런 만큼 부끄럽고 웃지 못할 뒷얘기가 많다. 특히 본회의장 점거 경험에서 앞선 민주당 의원들에게 한나라당은 ‘달인’의 칭호까지 붙였다.

◆알찬 ‘보급 전쟁’=15일 오후 9시30분쯤 본회의장 옆 의원휴게실로 치킨 25마리가 배달됐다.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이 밤을 새워야 하는 의원들을 위해 준비한 야식이었다. 함께 점거 농성 중인 민주당 의원들도 초청됐다. 정세균 대표를 비롯해 박병석·전혜숙 의원 등이 같이 먹었다고 한다. 과일도 빠지지 않았다. 민주당 이미경 사무총장은 자두를, 안규백 의원은 수박을 대접했다. 이 총장은 지난해 말 점거 당시에도 본회의장 공기가 탁한 점을 고려해 오이와 무를 보급했었다.

◆“역시 다르다” 탄성=한나라당 의원석에선 “민주당이 역시 다르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밤이 깊어지자 민주당 의원들이 미리 준비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홍영표 의원은 아예 여행용 가방을 들고 와 슬리퍼를 꺼내 신었다. 박선숙 의원은 운동화로 갈아 신고 로텐더홀을 수십 바퀴 돌며 체력을 다졌다. 김춘진 의원은 본청 밖으로 나가 스트레칭을 했다. 김 의원은 “우리가 한나라당에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즉석 사랑방 모임=점거한 지 대여섯 시간이 지나자 본회의장에선 여야 구분 없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한나라당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나는 정치 일선에서 손 뗐다”고 말했다. 그러자 같은 당 차명진 의원이 “일선이 아니라 6선(이 전 부의장의 선수)이시잖아요. 저는 2선이고요”라고 말해 의원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잠시 뒤엔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찾아왔다. 의원들 사이에선 “우리끼리 신사협정을 맺자. 다음 날 10시까지 다시 오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도 ‘농반진반’으로 돌았다. 사랑방 모임은 새벽 2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코미디 같은 상황”=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본회의장 입구에서 민주당 조경태 의원과 마주치자 “얼마나 코미디 같은 상황이냐. 모두 국민 앞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푸념했다. 조 의원도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소속인 송민순(민주당) 의원과 구상찬(한나라당) 의원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점거하지 않겠다는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3교대로 근무=한나라당은 상임위별로 3개 조를 짰다. 15일 밤 당번은 법사·정무·외통·국방·환노위였다. 민주당도 원내부대표를 중심으로 상임위를 고려해 3개 조를 짰다. 문방위 점거조는 따로 편성했다. 한나라당은 24시간마다, 민주당은 8시간마다 교대하는 시스템이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꼬박 하루를 지키다 보면 장기전으로 갔을 때 우리가 체력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어차피 나중에 몸싸움을 할 텐데 몸이나 풀자”며 민주당 의원에게 씨름을 제안해 의장석 부근에서 ‘씨름 경기’가 열렸다는 얘기도 들렸다.

선승혜·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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