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8월 그리고 50년]오늘의 시각-사회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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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8년은 화려한 건국의 팡파르와 함께 '고난의 사회운동사' 가 시작된 해다.

그후 50년은 분단.취약한 민주주의.경제적 저발전 (低發展) 등 건국의 미완성 과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권력과 사회운동간에 역동적 상호작용의 역사였다.

해방에서 6.25까지의 해방공간은 모든 사회적 욕구가 분출되고 정치세력간 갈등이 극단으로 표출된 시기였다.

또 그 갈등이 외세의 '원심력' 과 결합되면서 전쟁으로까지 치달은 일종의 '광기 (狂氣) 의 시기' 이기도 했다.

6.25는 이러한 '광기' 의 역사가 종결되고 사회운동의 새로운 '전후 (戰後) 역사' 가 시작되는 계기였다.

전후 사회운동의 역사는 사회운동이 직면했던 문제의 성격에 따라 크게 3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전쟁 이후 60년 4.19까지는 경제적으로 '저발전' 의 문제들과 정치적으로 민간 권위주의 문제에 사회운동이 대결한 시기. 사회운동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심화된 절대빈곤과 '이식된 민주주의' 의 문제들, 즉 부패와 권력남용.부정선거 등 이슈들과 씨름했다.

61년 군사쿠데타 이후 87년 6월항쟁까지는 '발전 (산업화)' 의 시기이자 '발전을 위한' 독재의 시기였다.

사회운동은 저발전의 모순에서 군부 정권이 주도하는 '발전' 을 향한 국가적 동원체제의 모순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발전을 위한 독재는 점차 독재를 위한 독재 (유신체제) 로 경직돼갔다.

이에 따라 독재에 항거하는 사회운동도 고조됐다.

이 시기에는 제도정치가 위축되면서 '운동정치' 가 이를 대신했고, 발전의 모순에 대결하는 사회운동은 '민중운동' 으로 그 폭을 넓혀갔다.

한국경제가 압축형 고도성장을 경험했다면 사회운동 역시 반독재 민주화운동 속에서 압축형 성장을 경험한 시기였다.

세계가 주목하는 역동적인 '사회운동의 나라' 로 등장한 것. 이미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 돼버린 민주화를 총칼로 막은 80년대 전두환 (全斗煥) 정권 아래서 사회운동은 더욱 '혁명화' 돼갔고 이념적으로 급진화됐다.

저항이 하나의 유행처럼 돼 탄압과 저항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사회운동의 정점인 87년 6월항쟁은 우리 사회가 군부정권 시대에서 본격적인 민주주의 이행의 궤도로 진입케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제 사회운동은 '발전 이후' 의 한국사회가 야기하는 새로운 이슈들, 민주사회로의 불안정한 이행에서 제기된 과제들과 씨름하게 된다.

환경.교통.경제력 집중.부패.지역주의.지방자치 등이 그 사례들이다.

이 시기에 출현한 시민운동은 합법적 방법을 활용하면서 그동안 반독재라는 절박한 시대적 과제에 가려져 있던 발전 이후의 많은 문제들을 쟁점화함으로써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반세기의 사회운동은 몇가지 특징적인 양상을 보였다.

먼저 학생운동.지식인운동.교회운동 등이 사회운동의 발전과 확대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사회운동이 '레드 (red) 콤플렉스' 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상대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순수성이 공인된 학생이나 지식인들이 초기 두드러진 역할을 한 것이다.

둘째, 노동.농민운동 등 기층 민중운동은 정치적 억압이 이완되는 시점에 분출됐다는 점이다.

평상시 민중운동에 대한 통제 분위기가 있어왔다는 방증이다.

80년 '서울의 봄' 에 발생한 사북 (舍北) 사태나 87년 6월항쟁 직후 폭발한 7, 8월 노동자 대투쟁 등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셋째, 정권교체가 사회운동의 고양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회운동의 선도적 민주화 투쟁이 대중적 투쟁으로 발전, 극적으로 표출된 이후에야 비로소 정권의 의미있는 변화들이 나타났다.

부마 (釜馬) 항쟁이 나고서야 긴급조치 시대가 종결됐고, 80년대의 숱한 의문사와 목숨을 건 저항이 있고서야 간신히 민주화의 도정에 올랐다.

김대중 (金大中) 정부의 출범과 국제통화기금 (IMF) 지원체제로의 '이중적 전환' 은 사회운동이 위치하는 조건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 변화가 사회운동에 축복이 될지, 위기가 될지는 이 시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의 응전 (應戰)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전환이 '탄압 - 저항' 의 악순환에서 '비판 - 견제' 의 선 (善) 순환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 제2 건국에 부치는 바람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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