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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흔들리는 맞벌이가정]울고싶은 '만능주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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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늘 가슴이 답답하고 가끔씩 숨이 막히고 어지러워요. 소화도 안되고 토할 것 같고…. " 중소기업체 대리 오모 (33.여) 씨는 최근 강북삼성병원 정신과를 찾았다.

진단결과는 억압된 불만과 분노, 그리고 누적된 스트레스에 기인한 공황 (恐慌) 장애 초기증상. 과다한 가사노동, 그리고 이를 도와주지 않는 남편 (35.대기업 과장) 과의 갈등이 겹쳐 생긴 병이다.

맞벌이는 이미 대세가 됐지만 우리 사회의 문화는 아직도 여자가 집에서 살림하던 시대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혼여성 취업률은 91년 48.7%, 95년 49.4%, 97년 51.1%로 계속 느는 추세다.

이 비율은 98년 상반기에 47.6%로 떨어졌지만 이는 경제난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탓이다.

실제로 기혼여성중 취업자.취업희망자 (유배우 경제활동인구) 비율은 지난 1월 46.4%에서 6월엔 51.2%로 늘었다.

(자료 : 통계청 사회조사과) 결혼한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은 자녀 교육비.내집 마련 등 경제적 이유에서나 여성의 사회적 자아실현을 위해서나 당연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지원 (직장탁아소.육아휴직.탄력근무제 등) 은 물론 가정내 협력도 미미하기 짝이 없다.

직장에서는 오히려 '맞벌이 부부는 정리해고 1순위' 라는 압력과 스트레스까지 가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 결과는 스트레스로 인한 부부 불화.정신병.이혼뿐 아니라 문제아동 증가에까지 이른다.

서울광혜병원 신승철 원장은 "한달에 30건 정도인 부부문제 상담중 절반이 맞벌이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면서 "해고불안.가사분담.육아문제가 주류를 이루며 우울증이나 화병을 안고 오는 수가 많다" 고 소개했다.

가정법률상담소 양정자 부소장은 "이혼상담을 하는 맞벌이 주부가 호소하는 문제의 30%는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나 몰라라' 한다는 것" 이라며 "최근 3~4년새 이같은 상담이 2배 가까이 늘었다" 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의 자녀도 사회 및 남편 지원부족의 심각한 피해자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홍강의 과장은 "서민층의 경우 맞벌이 가정의 초등학생 자녀들이 혼자 버는 가정보다 뚜렷하게 많은 행동 장애 (비행.문제행동) 를 보이고 있다" 고 지적했다.

이중고에 지친 주부가 아이에게 충분한 관심과 지원을 베풀기 어려운 탓이라는 것. 그는 "전문직.관리직 계층의 자녀는 맞벌이와 아닌 경우 사이에 이같은 차이가 없다" 면서 "이 계층에는 좀 더 나은 가사.육아 보조인력을 동원할 경제력과 어머니가 퇴근후 자녀를 돌볼 기력이 있기 때문" 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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