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PC격랑에 휘청하는 반도체왕국 인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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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퍼스널 컴퓨터 (PC) 붐' 을 타고 성장 가도를 질주했던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 미 인텔사 (社)에 비상이 걸렸다.

1천달러 (약 1백30만원) 미만의 '저가 PC시장' 확대 추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연간 30~50%씩 늘어났던 순이익이 올해 상반기 33%나 줄어든 24억달러에 그쳤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는 10여년만에 처음으로 3천여명을 감원하는 쓰라림을 맛보았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전세계 PC 가격파괴 현상은 엄청나게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저가 PC의 비중은 지난해 25%에서 올해 33%, 수년 내 절반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18개월 전 1천달러 밑으로 팔리기 시작했던 저가 PC의 가격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제 4백달러대 아래로 진입하기에 이르렀다.

중소 업체들은 연초부터 인텔 호환칩을 쓴 4백99달러 (약 65만원) 짜리 초저가 PC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메릴린치증권사의 반도체담당 분석가 토머스 쿨락은 지난 20일 보고서를 통해 "장차 PC가격이 2백달러대로 떨어질 것이며 이때 인텔 칩의 가격은 30달러선이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경제위기를 겪는 아시아 지역에서 PC 판매대수가 5% (매출 기준 35%)가량 감소하면서 저가 기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이런 추세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인텔은 고성능 PC칩 분야에서 거의 독주하다시피 하고 있으나 저가 시장에서는 비슷한 성능의 칩을 20~30%가량 값싸게 공급하는 AMD.사이릭스.IDT 등에 밀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PC데이터사 조사에 따르면 지난 6월중 미국 내에서 판매된 저가 PC에 장착된 마이크로프로세서 (MPU) 중 인텔 칩 점유율은 42%에 불과, AMD (45%)에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때 90% 이상을 차지했던 MPU시장 점유율도 최근 85%로 낮아졌다.

이에 대해 인텔은 저가 칩과 고성능 칩 분야의 두마리 토끼를 함께 잡는다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저가 칩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인텔은 24일 (현지시간) '멘도시노' 라는 암호명으로 개발해온 신형 셀러론 칩 2종 (3백㎒.3백33㎒) 을 출시한다.

신형 칩의 가격은 1백39~1백79달러선. 주로 9백달러대의 PC 시장 공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익성이 높은 고성능 칩 분야에서도 신제품을 계속 내놓아 후발 업체의 추격을 뿌리칠 심산이다.

인텔은 24일 4백50㎒짜리 신형 펜티엄Ⅱ 칩을 6백65달러에 내놓는다.

이와 함께 이동전화.휴대용 전자기기 등에 장착되는 비 (非) PC용 칩 사업 분야도 강화할 계획이다.

연간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쏟아붓고 사내 교육과정에만 1억6천만달러를 쓰는 엄청난 지적 투자, 각종 회의때 직위에 관계없이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는 개방성, 창의력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는 인텔의 '성공 신화' 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말해준다.

올해로 창사 30주년을 맞는 인텔이 어떻게 제2의 전성기를 열어나갈 지 주목된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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