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내각 총해산 배경]옐친,경제파탄 '떠넘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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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24일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전 총리를 정식으로 총리로 지명, 겐나디 셀레즈뇨프 국가두마 (하원) 의장에게 비준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하원은 헌법에 따라 1주일 내에 총리 비준 여부를 심의해야 한다.

옐친이 내각 총해산을 단행한 것은 '잘못은 모두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특유의 통치술에 다름아니다.

경제 실정에 대한 두마와 국민 여론의 비난 화살을 총리 이하에 돌려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내각 총해산은 앞으로 있을지 모를 탄핵이나 사임 압력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옐친의 의도를 깔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점은 체르노미르딘 총리의 복귀에 즈음해 TV담화에서 행한 발언 내용이다.

옐친은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는 통치철학을 펼쳐 왔으나 이날 "체르노미르딘의 큰 장점이 성실성과 정직성, 그리고 건실함" 이라고 전제, "이런 장점들이 당면한 (2000년) 대선에서 결정적 발판 노릇을 할 것" 이라고 밝혔다.

체르노미르딘은 또 국방부 장관 등 이른바 요직까지 지명할 수 있는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크렘린궁 대변인은 전했다.

사실 러시아의 어수선한 정치권과 재벌 세력들이 판치는 경제계를 중재하면서 위기에 빠진 경제를 운용해 나갈 인물로 그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과거 총리 재임시 발휘했던 개혁.보수 세력의 중재 경험과 친화력 등을 감안하면 총리 비준안이 하원에서 공산당 등 야당의 반대로 우여곡절을 거칠 망정 통과될 것이 확실시된다.

앞으로 옐친은 체르노미르딘의 강점들을 십분 활용할 것이나 그의 앞날은 '체르노미르딘 카드' 에도 불구하고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체르노미르딘이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면 옐친의 상대적 위상은 추락할 것이고, 거꾸로 위기 해결에 성공하지 못하면 옐친 자신의 정치적 운명도 풍전등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체르노미르딘도 정치적 부담은 만만치 않다. 특히 경제난국의 원인을 그가 과거 시행했던 정책들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아 경제회생의 가시적 성과를 하루 속히 내놓아야 하며 이를 위해 국내외의 대 정부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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