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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의 그린수기]37.적적할땐 전자오락하며 지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골프에 관련된 것 외에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취미가 뭐냐" 는 것이다.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참 난감하다.

맨날 하는 일이 골프밖에 없는데 내게 무슨 특별한 취미가 있겠는가.

취미를 즐길 만한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없어요" 라고 하기가 멋쩍어 "전자오락" 이라고 말해왔다.

골퍼들에게 취미란 경기의 긴장감을 씻기 위해 고안한 자기만의 방식이다.

로라 데이비스는 도박을 즐긴다고 들었다.

실제로 데이비스를 도박장에서 본 적이 있다.

지난해 호주 마스터스대회에서 일행과 도박장 구경을 갔다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 다가가 보니 뜻밖에도 데이비스가 열심히 '도박' 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무척이나 놀랐었다.

골프선수들이 나름대로의 취미가 있겠지만 나는 전자오락을 즐긴다.

늘 골프채와 씨름을 하느라 자투리 시간이 나더라도 어딜 가거나 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 방안에 앉아 전자오락을 하다 보니 점점 잘하게 됐다.

테트리스 게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목이다. 누구하고 대결해도 자신있다. 이 게임을 할 때마다 항상 최고점수를 냈다.

언니는 내가 게임하는 걸 보면 언제나 입을 딱딱 벌린다.

동생은 한참 지켜보다가 "전자오락 대회에 나가라" 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미국에 와서도 공식적인 훈련이 없는 일요일이면 가끔 올랜도 근처의 부시가든을 찾아가 전자오락을 즐겼다.

내가 전자오락을 시작하면 데이비스가 도박을 할 때처럼 '갤러리' 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정신없이 게임에 몰두하다 함성이 터져 돌아보면 꽤 많은 관중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당시에는 내 얼굴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다.

올랜도 집에서도 컴퓨터 게임을 종종 한다.

게임에 열중하다 보면 나름대로 이국생활의 적적함을 달랠 수 있다.

웬만한 게임은 다 잘하는데 내가 유독 약한 종목이 있다.

컴퓨터 골프게임이다. 실전과는 달리 게임만 시작하면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는가 보다. 매니저와 골프게임을 하면 번번이 진다.

매니저는 "박세리 맞아?" 하며 놀리곤 한다. 그럴 때는 정말 약이 오른다.

지금은 골프게임은 하지 않는다. 지는 게 싫기 때문이다.

미국에 와서 새로운 취미를 얻었다. 요리다.

한국에 있을 때는 아버지가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칼에 손을 베이면 큰일이라고. 문제는 내 요리가 별 맛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먹어보라고 권하면 마지 못해 먹는 느낌이 든다.

부모님까지도. 지난주에는 레드베터 코치의 권유로 낚시도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때를 기다리는 점에서 골프와 비슷한 면이 있다.

틈틈이 책도 본다. 무협지를 좋아한다. 천하무적 주인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언니가 가끔 책을 보내주는데 '검객' 이라는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 취미이자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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