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절망과 원통을 삭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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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수재민이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

부서진 집과 망쳐진 고추밭을 바라보던 그 농부는 집 고치기를 중단하고 고추밭에 가서 극약을 먹었다.

한 대학생이 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고 자신은 죽었다.

그런데 구출된 어린이의 부모는 죽은 이의 유족들을 위로하는 말 한 마디 없이 사라졌다.

유족들은 어이가 없었다.

왜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진짜 사람이 죽어야 했는지 너무도 원통 (寃痛) 하기만 했다.

지금 절망하고 원통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앞의 두 사건은 일부러 극적인 예만을 골라 들었을 뿐이다.

은행과 크고 작은 기업의 퇴출이나 구조조정으로 멀쩡한 사람들이 쓰러져 간다.

이미 퇴직당한 이는 오히려 담담하다.

퇴직이 예정된 사람은 속된 말로 '죽을 맛' 이다.

"왜 하필 내가" 를 말하면서 누구를 원망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체념하면서 닥치는 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겉마음뿐이다.

묘한 절망과 원통의 울화가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곤 한다.

수해민이나 실직자에게만 고통이 있는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다.

비행기 회사의 주인에게 물어 보라.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건설회사의 주인에게 물어 보라. "요즘 살 만한가" 고. 그들은 실직자가 오히려 속 편하다고 말할 것이다.

심지어 나 같은 삭발자에게도 속스러운 고통은 따라다닌다.

1천년 동안 환경을 지켜 온 고찰에 와 30년 된 그린벨트 법을 들이대며 멀쩡한 대지에 건물은 커녕 천막도 칠 수 없다고 한다.

그린벨트 구역에 사는 이는 감독관청의 죄인이 되고 그들의 눈치를 보는 종이 될 수밖에 없다.

법조문 앞에서 절망하고 안타까워한다.

외아들을 잃고 울부짖는 부인에게 석가가 말했다.

집안에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는 사람을 한 명만 데려 오면 아기를 되살려 주겠다고. 나는 항상 즐겁고 편하게만 살고 싶어하는 이에게 석가의 교화법을 그대로 쓰고 싶다.

아무런 고통이 없다고 하는 사람을 한 명만 데려오면 내가 모든 고통을 없애주겠다고 말이다.

사람은 왜 사는가.

뼈다귀 하나를 얻으면 누구에겐가 빼앗길까 두려워 구석진 곳에 가서 온종일 그것을 이리 저리 핥아대는 개가 그 답을 만드는데 좋은 힌트를 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석가는 이상한 방법으로 절망의 고통을 이기라고 가르친다.

저 뼈다귀를 놓는데서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뼈다귀를 잃고 괴로워하는 것은 작은 절망이다.

크게 절망해야 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우리 모두의 죽음을 생각하며 고민하는 사람이 크게 절망하는 것이다. 크게 절망하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자기를 무한히 낮추고 없앤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한 수행자가 선사에게 물었다.

"부처는 어떤 분입니까. " 선사는 "용변 후 항문을 닦아 내는 휴지이니라" 고 대답했다.

똥은 더럽다.

물론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 경우에도 똥이 더럽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가 각자의 나를 저 '똥 닦이' 와 같이 천하고 더러운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곳에 무슨 절망과 원통함이 붙겠는가.

본래 가진 것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고, 처음부터 낮으니 비교할 것도 없다.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저 농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큰 절망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목숨마저 놓고 가는 것을 생각하면서 농사를 망치고 집이 망가졌다는 것이 어떻게 자살의 이유가 되겠는가.

어린이를 구하고 죽은 대학생의 유족들이 원통해 하는 것도 역시 작은 절망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옆에서 죽어가는 어린이를 구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인연의 문제다.

그 상황에서 물에 빠진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다.

그것을 보는 대학생이다.

요리조리 따지다 보면 큰 절망의 마음이 나오지 않는다.

얼결에 진여 (眞如) 의 본성이 시키는대로 따를 때, 남을 구하고 자신을 죽일 수 있다.

작은 절망은 이 몸만 죽인다.

생사해탈 (生死解脫)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큰 절망을 느껴야 저 허공과 같이 걸림 없는 큰 몸을 얻을 수 있다.

석지명(청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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