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호암갤러리 조선후기국보전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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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한국관이 생겨서 한때 화제가 되었다.

그 방인즉 아시아 몇 나라 중 한가운데에 위치해서 이웃나라들과의 예술적 성품이 잘 비교되어 재미있었다.

한국의 방은 특별히 우아하고 단정하고 고요함으로 돋보였다.

조선시대에 무슨 미술이 있느냐고 스스로 얕잡아 비하하는 말을 요즘도 가끔 듣는다.

식민지시대에 잘못 배운 여운이 아닌가 싶다.

이번 호암갤러리 전시회 (10월11일까지) 는 그런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좋은 기회가 된 듯 싶었다.

사실 아시아에서 한국과 중국말고는 격조 높은 예술을 이룩한 나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대에 있어서 인도는 건축에서는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과 조각 등 순수예술분야에서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조선후기 국보전을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인데 왜 진작 이런 전시회를 하지 못했느냐 하는 푸념이었다.

사실 나도 놀랐다.

규모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그 격조로 보나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훌륭함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다시 보니 너무나도 아름다워 애처롭기까지 하였다.

먹물도 다 삭제되고 붓이라고 하는 흔적마저도 가까스로 있는듯 없는듯 높은 산 눈바람이 시린 겨울나무처럼 고독함으로 가슴이 저려왔다.

심사정의 매화그림, 이인상의 소나무그림은 높은 회화적 완성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겸재의 그 유명한 인왕산 그림과 금강산 그림은 최고의 명품이며 최고의 걸품이었다.

정조임금의 파초그림에서는 위정자의 깨끗한 기품을 읽을 수 있어서 특별한 감회가 있었다.

대원군과 민영익 등 권문세가의 난초에서도 곧은 기개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 전시회에는 특별히 기분 좋은 두 점의 작품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벅수장승이고 또 하나는 미인도였다.

미인도는 간송미술관에 있는 심사정의 것과 매우 흡사하였는데 내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도쿄박물관 소장품으로 되어있는 이 미인도에 더욱 애틋한 정이 가는 것이었다.

청초하고 멋스러운 여성미와 표현의 능란함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였다.

벅수장승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이처럼 참신하고 이처럼 소박하고 이처럼 꾸밈이 없는, 그리고 미술의 역사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진정한 촌사람의 솜씨는 세계 어느 구석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그 손 만든 솜씨를 보면 20세기를 대표하는 조각가 브랑쿠지인들 어찌 당하랴 싶었다.

그밖에 유명무명 장인의 애정 어린 별의별 진품들을 보면서 우리 선조들의 위대함에 재삼 탄복하고 감사하였다.

조선조 후반 이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씨앗들이 나라 잃고 단숨에 꺾여버렸다.

까치와 호랑이를 잘 그린 이름 없는 예술가들, 어느 시골 깊은 산자락에서 구워진 그 사심없는 아름다운 그릇들을 보면서 내가 한국사람임이 새삼 자랑스럽게 생각되었다.

조상들의 숨결을 다시 살려 이어야 할 것이다.

최종태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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