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000억 벤처 ③ “카지노 모니터에 과감한 베팅 성공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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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코텍이 만드는 디지털 광고판용 모니터

“진입장벽이 높을수록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일단 성공만 하면 오히려 안정적인 성장이 보장되기 때문이죠.”

카지노용 모니터 등 특수 모니터 시장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코텍의 이한구(60) 회장은 “벤처는 남들이 쉽게 따라 하지 못할 부분을 노려야 한다”고 말했다.

매출 1000억원 전후의 벤처기업이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주로 시장에 신규 경쟁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범용 제품의 경우 가격 경쟁력이 월등한 중국 등이 뛰어들면 견디기 어렵다.

엄격한 기술 장벽으로 진입이 어렵지만 높은 부가가치가 나오는 특수 모니터 시장에 뛰어든 코텍은 이런 면에서 모범적인 기업이다. 지난해 1386억원의 매출과 202억원의 영업 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은 2007년보다 50% 넘게 성장했다.

이 회장은 “처음 한 미국 업체가 독점하던 카지노 모니터 시장에 뛰어들 때는 직원의 반대가 많았다”며 “연구원들이 포기하자고 할 때마다 ‘이 길만이 살 길’이라고 고집했다”고 말했다.

카지노의 슬롯머신 등에 쓰는 모니터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기본적으로 연중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먼지·습도 등 악조건을 견뎌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특정 모니터의 화질이나 색상이 달라지면 카지노 손님이 의심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같은 카지노에 있는 수백, 수천 대의 모니터의 화질이 같아야 한다. 코텍은 1996년 모니터의 화질·색상이 균일하게 맞춰지는 ‘오토 컬러 바이어스’ 기능을 자체 개발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술뿐 아니라 신뢰도 중요하다. 이 회장은 “처음 납품한 기계 1000여 대 중 몇 대에서 불량이 발생한 적이 있다”며 “이때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 전량을 회수해 결함 없는 제품으로 다시 납품했다”고 말했다. 이런 과감한 시도를 통해 세계적인 업체의 신뢰를 얻으면서 매출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코텍이 특수 모니터 등 진입장벽 높은 분야를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코텍의 전신인 세주전자는 86년 창업 당시 아케이드 게임기용 모니터를 제조했다. 흔히 말하는 ‘오락실 게임기’용 모니터를 만들어 재미를 봤지만, 경쟁 업체가 잇따라 뛰어들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 회장은 “이런 이유로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면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틈새 시장을 찾는 데 전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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