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 신작소설 '말탄자는 지나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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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수산 (52) 씨는 필화사건 이후 권력을 향해 지금껏 함구해왔다.

하지만 그게 스스로의 의지는 아니었다.

81년 중앙일보에 '욕망의 거리' 를 연재하다 사소한 표현을 문제삼은 군사정권에 의해 속칭 '빙고하우스' 로 끌려가 경악스런 고문을 받았던 '더러운 기억' .82년 그는 곧 권력이 가지는 파괴력의 행태를 비판한 소설을 썼다.

사소한 표현을 문제삼는 서슬퍼런 그들이 득세함을 알고도 그 작품을 발표하려 했다.

역부족이었다.

출판사가 작가의 안전은 물론 잡지의 존폐를 걱정하며 '게재 불가능' 이란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때 실리지 못하고 16년이 지난 지금에야 햇빛을 보게 된 한수산의 중편 '말 탄 자는 지나가다' 가 최근 나온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실렸다.

한씨가 소설 '사랑의 이름으로' 를 발표한 지 3년만이다.

이 소설은 혁명군 이야기다.

왕정이 시민들의 봉기로 무너지고 이어서 들어선 민주연립정부가 출범한 지 17개월 되던 날 민간 기병대는 혁명을 일으킨다.

기병대는 하루만에 권력의 심장부를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주인공 중위는 야전사령부 장군을 압송해 총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장군은 총알을 맞아도 죽지 않고 장군뿐 아니라 아무도 죽지않는다.

혁명과 함께 죽음이 사라지고 혼란이 벌어진 것. 옛 체제를 전복한 혁명 후에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는 대신, 구질서가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삶의 기본적인 질서조차도 파괴되는 아이러니를 부른 것이다.

마침내 혁명군들은 혁명을 포기하고 중위는 죽음이 살아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소설은 현실과 환상세계를 넘나들며 혁명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작가에게 혁명은 부정의 대상이다.

혁명은 혁명을 낳고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미완성 이벤트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죽음이 없는 혁명 대신 죽음이 살아있는 고향을 택하도록 하고 있다.

한수산씨는 그의 필화사건에 얽힌 그때와 지금을 계속 작품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말탄 자는…' 가 시작이다.

고문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상아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가' 가 곧 나온다.

또 혁명과 고문의 고통을 넘어 파멸한 인간이 순화되고 회생해 가는 과정을 그린 '여섯번째 날' 탈고를 앞두고 있다.

한수산씨의 이 세 작품은 81년 이후 고문과 일본으로의 잠적, 그리고 귀환이라는 80.90년대 개인사를 마무리하는 작업이기도하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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