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찍는 '여름별미' 전설의 고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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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KBS 드라마국의 안영동 부주간은 요즘 1년후에 방영할 드라마 준비에 바쁘다. 매일 쫓기듯 찍는 우리 방송사의 드라마 제작 관행에 견주면 파격적이다.

그 드라마는 다름 아닌 내년치 '전설의 고향' . 올 여름 KBS - 2TV가 방영한 '전설의 고향' 은 여러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MBC가 최진실.고소영 등 톱 탤런트를 대거 투입해 땀을 쏟은 '추억' 과의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았다 (방영 첫주부터 25.5% 시청률에서 2주째엔 '추억' 을 눌렀다) . 한이 맺혀 귀신이 되고, 인간이 되길 하루 앞두고 꿈이 깨지는 등 뻔한 줄거리를, 그것도 신인 연기자들이 해낸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성과는 대단하다.

이런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이 프로에 대한 시청자들의 '충성도' 가 높기 때문" .이는 복날이 가까워 오면 일부 식도락가들이 지나가는 견공 (犬公)에게 각별한 시선을 보내듯, 많은 사람들이 '전설의 고향' 을 여름 보내기 통과의례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이런 주장은 미디어서비스코리아가 분석한 시청행태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통상 인기를 끄는 미니시리즈의 시청률은 1~2회 방영분보다 전체 방영분 시청률이 높다.

최근 예를 보면 전체시청률 33.5%를 기록한 '미스터Q' (SBS) 의 그것은 24.7%였고, '세상끝까지' (MBC) 는 전체시청률 27.8%, 1~2회 21.8%를 기록했다.

반면 '전설의 고향' 은 1~2회가 25.5%로 전체시청률 (23.2%) 을 앞선 것. 이런 현상은 96~97년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프로를 한 번쯤은 봐야한다는 생각에 처음 많은 관심을 보인 후 회를 거듭하면서 관심이 줄어든다는 얘기. 또한 30대 이상의 시청률이 월등히 높은 점도 옛 추억과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안부주간의 말 - "사실, 얘기가 권선징악.사필귀정 등 너무 뻔하잖아요. 그래서 지난해엔 새로운 스타일.내용의 시도를 했어요. 지금 와서 얘긴데, 시청자들의 항의가 대단했어요. 그럴 바엔 '전설의 고향' 이름을 쓰지 말라는 분도 계셨죠. 시청률이 뚝 떨어졌던 건 물론이고요. " 본디 모습으로 돌아간 올해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재차 확인한 셈이 됐다.

그래서 앞으론 딴 생각 않고, 대신 사계절의 풍취를 담은 진정한 '전설' 로 보답키로 한 것. 진짜 가을 낙엽과 겨울 한설이 가득한 99년판 '전설의 고향' 은 어떻게 다가설까.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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