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습기만 있으면 '내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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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열대기후를 연상시키는 살인적 폭우와 고온다습한 날씨 속에 올해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것이 곰팡이. 주부 임수경 (30.서울송파구문정동) 씨는 며칠전 옷장문을 열었다가 봄가을용 검정자켓과 바지에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습기제거제만으로는 안심이 안 돼 폭우가 쏟아지는 동안엔 거의 매일 옷장문을 열어놓다시피했으나 햇볕이 나자 잠시 방심했던 것. 목욕탕.싱크대.신발장 속은 물론, 차안에 무심코 버려둔 휴지에까지 다음날 곧장 하얗게 곰팡이가 생긴 것을 보고 임씨는 요즘 '곰팡이 노이로제' 에 걸릴 지경이다.

'곰팡이 천지' 가 된 것은 대부분의 곰팡이에게 습도가 가장 중요한 번식조건이 되기 때문. 생명과학연구소 유전자원센터의 배경숙 (裴京淑) 박사는 "자양분을 거의 없앤 증류수를 담아놓은 유리병 속에서도 1년 후엔 하얗게 곰팡이가 필 정도" 라고 설명한다.

냉장육을 부패시키는 곰팡이인 카에토스더리움도 있을 만큼 온도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번식력도 강해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포자 상태로 살아 있다가 조금만 환경이 좋아지면 1개의 포자에서 1백만~1천만개의 포자가루를 터뜨리며 번식을 한다.

일반적으로 곰팡이는 상대습도가 80~90%만 되면 기지개를 펴기 시작, 95%가 넘으면 가장 활발해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7월 80%.8월 70%정도이던 평균상대습도가 요즘엔 평균 90%를 육박해 '곰팡이가 물을 만난 셈' . 이런 습성으로 집안에서도 욕실과 부엌 주변에서 가장 쉽게 곰팡이가 생긴다.

게다가 탄소와 질소를 주요 영양분으로 삼는 곰팡이에겐 '실리콘' 이라 불리는 욕실 이음새 마감재에 들어있는 미량의 탄소조차 먹이가 된다.

수세미.도마도 젖은 채로 두는 것이 문제. 의외로 곰팡이의 세포구조는 사람과 비슷해 자칫 곰팡이를 없애려다가 사람이 해를 입을 수도 있어 곰팡이 제거가 쉽지는 않다.

우선 곰팡이의 세포벽만 파괴해 없애는 방법이 있다. 또 곰팡이의 세포막엔 사람에겐 없는 지질성분인 에르고스테롤이 있어 이 물질의 대사과정을 방해하는 것도 한 방법. SK대덕기술원의 송원성 (宋源晟) 주임연구원은 "미역 등 해조물에서 추출한 요오드성분을 이용, 곰팡이의 물질전달 및 삼투압조절시스템을 방해해 세포막을 파괴하는 것이 '팡이제로' 제품의 원리" 라고 설명한다.

곰팡이제거제를 써도 포자상태의 곰팡이까지 완전제거하기란 불가능한 일. 하지만 습기를 제거하고 락스를 최대한 이용하면 눈에 띄는 번식은 막을 수 있다.

욕실의 경우 환기만 확실히 해줘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아무리 락스와 세제를 이용해 청소했더라도 문을 닫아두면 헛일. 지난해 일본오사카시립환경과학연구소는 공기중의 부유곰팡이는 욕실에 환풍기를 틀거나 창문을 열어놓았을 때가 문을 닫아두었을 때보다 5분 후 1/2로, 10분 후에는 1/5로 감소됐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환풍기도 틀고 창문도 열어놓았을 때는 처음에 비해 5분후 1/3이상, 10분후엔 1/10, 40분 후엔 1/100로 줄어들었다.

수세미나 도마는 락스로 살균한 뒤 햇볕에 바짝 말리는 것이 최선. 최적 산성도가 pH7.0인 일반세균과 달리 곰팡이는 최적 산성도가 pH5.0~5.5로 산성을 좋아해 식초물도 곰팡이제거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

의류의 곰팡이는 단 한번 입은 옷이라도 반드시 세탁해놓는 것만이 예방법. 좀과 달리 탄소계인 면섬유가 단백질이 주성분인 모섬유보다 곰팡이 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런 눈에 띄는 곰팡이들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소파나 카페트 사이에 있는 곰팡이 포자들. 이들은 오히려 실내가 건조하면 먼지와 함께 날아다니다 각종 호흡기관련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므로 환기를 해서 적정습도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좋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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