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 장보러 안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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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불황이 계속되자 소비자들이 주로 먹고 입는 것을 줄이는 방식으로 내핍생활을 하고 있다. 또 둘 중 한명꼴로 내년에도 소득이 줄거나 '예측하기조차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래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7대 광역시에 사는 주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 구매 패턴 조사' 결과를 27일 발표했다. 상의 관계자는 "조사 대상이 가계를 운영하는 가정주부여서 실제 장바구니 경제를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응답자들은 수입이 감소하면서 옷 구입비(24.7%).외식비(18.3%).식료품비(16.1%).문화레저비(13%) 순으로 생활비를 줄이고 있다고 대답했다. 저축(10.1%)까지 줄이는 상황이지만 자녀 과외비(6.5%)나 경조사비(1.6%) 지출은 줄이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달간 쇼핑 횟수는 유통 업태에 관계없이 모두 지난해보다 줄어들었다. 특히 수퍼.재래시장에 비해 객단가(손님 한명당 평균 구입금액)가 높은 백화점.대형할인점 쇼핑 횟수가 더 많이 감소했다.

생필품은 구매하지만 충동 구매나 큰돈이 들어갈 가능성이 큰 백화점.할인점에는 되도록 발걸음을 안 한다는 뜻이다. 또 지난 1년간 경기 침체로 저소득층이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계층별 가처분소득(개인소득 중 소비 .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을 지난해와 비교한 결과 월수입 5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은 33.7%만 소득이 감소한 반면 1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은 69.5%가 수입 감소를 경험해 불황 체감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전체적으로는 조사대상 가구의 57.9%가 지난 1년간 수입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 5월 상공회의소가 실시한 같은 방식의 조사(응답자의 76.5%가 수입 감소) 결과와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통계청 조사에서는 올 1분기 가계당 월 평균 가처분소득은 지난해(232만8200원)보다 소폭 늘어난 244만3600원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대한상의 유통물류팀 이종명 연구원은 "평균 가처분소득은 늘었지만 수입이 감소했다는 응답이 58%에 이르는 것은 소득 양극화 현상이 그만큼 심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가처분소득 감소는 주로 ▶가족 내 실업자 발생▶금융부채 증가▶월급 감소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주부들은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하다는 반응이다. 1년 뒤의 가처분소득 전망에 대해 응답자의 27%가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고, 21.8%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이에 비해 내년에 소득이 늘어날 것이란 응답은 16.1%에 불과했다. 35.1%는 변함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대한상의 임복순 유통물류팀장은 "현재의 소비 위축은 가처분소득 감소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탓도 크다"며 "소비자들의 불안심리를 풀어주는 것이 경기대책의 첫 단추"라고 말했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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