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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외환보유고 논란 가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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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엔화 폭락.위안화 평가절하 압력 등 대외여건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적정한 외환보유고 수준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해말 아시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투자자들이 발을 빼면서 가용외환보유고가 거의 바닥나는 환란 (換亂) 을 겪었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전문가들과 일부 민간경제연구소 등에선 국내 가용외환보유고를 적어도 6백억~7백억달러는 쌓아놔야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가 거듭 부인하고 있긴 하지만 달러당 엔화환율이 1백55~1백60엔대를 넘어설 경우 위안화가 절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이에따라 아시아 각국 통화의 경쟁적인 평가절하가 이어지면서 외환위기가 재연될 사태에 대비, 국내 가용외환보유고를 국제통화기금 (IMF) 과의 합의치 (연말기준 4백10억달러) 이상으로 가능한한 많이 쌓아둬야 한다는 얘기다.

박진회 (朴進會) 씨티은행 부지점장은 "아시아 시장여건이 극도로 불안정한 만큼 보유고를 6백억달러 이상으로 넉넉히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 말한다.

물론 정부도 가능한한 외환보유고를 많이 쌓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보다 크게 늘어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외환보유고를 5백억달러까지 쌓기도 힘들다는 설명이다.

김우석 (金宇錫)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경상수지 흑자 등 '우리 돈' 이라면 얼마든지 상관없지만 '남의 돈' 으로 외환보유고를 마냥 쌓는 것은 문제" 라고 밝힌다.

현재 가용외환보유고중 3분의2 이상이 IMF.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ADB) 차관이나 외국환평형기금채권 (외평채) 발행을 통해 차입한 돈. 높은 이자로 빌린 돈을 가용외환보유고의 성격상 '언제든지 꺼내쓸 수 있는' 미국 재무부채권 (TB) 등에 낮은 이자로 운용하다 보니 막대한 역마진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비용' 문제 때문에 재경부는 외환보유고 확충을 위해 하반기중 예정됐던 외평채 추가발행 계획을 전면 연기했다.

대신 ^이미 예정된 IMF자금 20억달러 (3, 4분기 인출분 각 10억달러) 와 세계은행 자금 20억달러를 하반기중 도입하고^올해말 만기가 돌아오는 IMF 단기외채 원금 28억달러의 상환 연장을 추진하며^한국은행의 금융기관에 대한 외화대출금 50억달러 가량을 조기 회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수출입금융 지원자금.IMF외채 이자분 등 하반기중 외화수요를 충당하고 나면 5백억달러에는 못미친다.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KDI) 의 심상달 (沈相達) 거시경제팀장은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해 대외신인도를 높임으로써 외국인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 라며 "외환보유고만 많이 쌓아놓는 게 능사가 아니다" 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도 최근 발표한 '98한국경제보고서' 에서 과도한 규모의 외환보유고는 그만큼 투자를 감소시키는 기회비용을 초래하므로 경상수입액의 3~5개월치 수준에서 적정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책권고를 내놓기도 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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