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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교육개혁,과학적 사고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최근 교육부와 일부 대학들이 가위 혁명적이라고 할 만한 교육개혁 정책 및 방안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인기학과 폐지' '1백% 무시험제' '예약입학제' 등이 그 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입시과열 (過熱) 은 도저히 치유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동안 수많은 정책들이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서 '사교육비 절감' 과 '고교교육 정상화' 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하는 이러한 발상에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이러한 발상의 타당성을 올바르게 검증할 단계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이러한 검증단계를 생략한 채 교육개혁 의지 하나만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개혁의 실행결과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없으면 매우 커다란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참담한 국가적 손실을 입을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모든 대학이 학부제의 '획일화' 라는 소용돌이를 벗어난 듯하더니 이제는 많은 대학이 검증도 안된 입학제도 아이디어들을 공약하고 있다.

'2천몇년까지 몇% 무시험' 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 것인지는 이를 발표한 학교당국 자체도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필자는 새로운 교육제도의 타당성을 막연한 직감으로 표현하지 않고 과학적 수치로 표시할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면 과연 이러한 개혁이 사교육비 경감에 얼마나 이바지할 것인가.

이를 액수로 표시한다면 얼마고 이 평가치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인가.

현재 대학입시를 위한 사교육비가 연간 10조여원에 이른다는 수치가 나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얼마나 믿을 만한 값인지, 오차의 범위가 얼마인지, 통계치이면 당연히 나타나야 하는 오차에 대한 언급도 없다.

또 다른 예로 '무시험 고교장 추천제' 가 고교교육 정상화에 얼마나 이바지할 것인가.

먼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이를 올바르게 실행할 수 있는가.

주관이 개입하게 마련인 선발절차가 얼마나 신뢰성이 있을 것인가.

모든 고등학교의 추천을 똑같이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전국 2천여개 고등학교가 지닌 학교간 차이는 얼마나 되는가.

그 차이의 폭에 대한 신뢰도는 얼마나 큰가.

현재 대학으로서는 당국의 분석을 통보받지 못하고 있으며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자체적으로 이를 분석할 데이터가 없다.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과학적 수치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필요한 데이터를 충분히 축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정책과 방안들의 장점과 단점, 효과와 부작용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분석될 수 있게 마련이다.

또한 얻어진 정보들은 널리 공개돼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료와 정보의 축적.분석.공개.활용이 정보화시대의 기본개념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지 국민과 대학, 그리고 정부 모두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제도에 관한 한 어떠한 제도이건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결과를 예측하면서, 부작용을 가능한 한 방지하면서, 조금씩 서서히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는 교육정책 결정에 과학적 사고방식을 도입할 때다.

과학적 사고의 첫 단계는 19세기의 사상가 로드 캘빈의 말처럼 "모든 상황을 측정하고 이를 수치로 표현하는 것" 이다.

우선 상황을 측정하고, 수치를 얻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이건 이를 수치로 표시할 수 있을 경우에야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수치로 표시할 수 없다면 그에 대한 지식은 막연한 것이며, 그에 대한 의사결정은 주먹구구식이 되고 만다.

다음에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실행결과의 불확실성을 충분히 줄인 뒤 실천하는 것이 운이 좋아 성공하는 것보다 낫다.

교육은 백년대계이니 교육제도는 한두 해 늦어도 과학적 검증을 거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숨에 모든 것을 바꾸는 교육개혁 추진은 너무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지난 50년간 반복된 비과학적 교육정책과 졸속개혁은 나라의 앞날을 위해 이제 그만해야 한다.

교육개혁에 관한 한 대한민국 50년 구호도 바뀌어야 한다.

"대한민국 50년, 우리 다시 뛸 것이 아니라 앞을 보고 발을 땅에 딛고 차분히 걸어야 한다. "

김성인(고려대 교무처장.산업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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