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국립대 매코맥교수 著'일본,허울뿐…' 번역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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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0세기 후반의 일본은 어떻게 보더라도 위기다.

제 아무리 부유하고 명목상 강력한 것처럼 보여도 제 국경을 벗어나서는 별로 신뢰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일본이 개척한 '풍요로운 길' 은 사실상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봐야한다."

일본에 대한 섬세한 통찰을 통해 거침없는 비판을 가하고 있는 호주국립대 태평양.아시아학연구소 개번 매코맥교수의 저서 '일본, 허울뿐인 풍요' 가 번역됐다 (창작과비평사刊) .62년이후 줄곧 일본을 연구해온 매코맥교수의 책은 '일본알기' 수준을 넘어 현대 일본을 포괄적으로 그리고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매코맥교수는 일본을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국민들은 물론 그들의 일상생활과 자연환경 그리고 아시아 주변지역까지 모조리 동원하고 착취해낸 '비정상적인 체제' 라 정의한다.

그 결과 풍요는 얻었지만 실상 국민들은 형편없는 복지수준에서 불안과 공허감에 젖어있다는 것. 그 근거로 일본의 정치.경제를 들여다본다.

대표적인 예가 토건 (土建) 국가로서의 일본의 명성. 예산의 상당부분을 도로.항만건설 등 대규모 토목공사에 투입해 오고 있는 이면에는 전후 장기간 지속된 일당지배 체제하에서의 부패 고리가 존재한다는 것. 유착.가격조작.뇌물 등으로 점철된 이 고리는 대규모의 나눠먹기를 가능하게 했고 기업.관리.정치권의 공동이익을 만들어 내면서 나아가 야쿠자의 개입까지도 허락해야 했다.

반면 국민들은 철저히 소외됐다. 일본인의 삶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 1인당 소득이나 텔레비젼 보유대수는 세계 최고다.

반면 아파트 평균가격은 주민 연평균 수입의 12배이며 도영 (都營) 주택 청약율은 무려 40배다.

평균노동시간도 70년대 이래 변하지 않아 다른 선진국보다 무려 한해 2백~5백시간 더 일하고 있다.

때문에 고혈압과 신경장애 등의 발병률도 선진국을 앞서고 있다.

매코맥은 이를 자본주의 모순의 한 단면이라 말한다.

이밖에 아시아주의를 주장하면서 자국위주의 정책만 펴는 일본인의 어긋난 우월의식, 식민지배와 태평양전쟁에 대한 일본인들의 왜곡된 기억구조 등도 저자는 일본의 '불안한 징조' 로 파악한다.

이런 주장을 펴는 매코맥은 결코 '일본 두드리기' 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주장의 논거가 대부분 일본에서 출판된 학술서와 정부간행물 등이기 때문이며 일본비판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비전' 의 반면교사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저자는 일본을 개발모델로 삼았던 아시아 국가들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과연 그 길을 따를 것인가' 란 선택의 문제. 그러나 굳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일본의 실패' 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 그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저자의 일침은 우리도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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