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임창정·나한일 '엑스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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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중훈 넌 역시 입술이야, 코에 바짝 붙은 게 아주 멋져. 국민배우 안성기 넌 다 좋은데 이름이 그게 뭐야 너무 노골적이지 않아? 야 최진실 너무 예뻐 '쪽' .너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뜨면 나랑 주연 같이 하자. "

영화 '엑스트라' 에서 미래의 주연을 꿈꾸는 단역배우 봉수 (임창정) 와 왕기 (나한일) 는 이렇게 현역 배우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품평 (?) 한다.

그러다 자신들이 앞으로 돈을 벌면 만들 영화의 감독을 누구로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하는 말 "신승수감독? 걔는 핵심을 못잡아. 코미디영화 '할렐루야' 보면 알잖아" .자기 영화에서 자신의 자질을 평가절하하는 신감독의 '겸손' 은 미덕이지만, 애석하게도 그 대사는 '엑스트라' 를 가장 적절히 평가한 '고백' 이 되고 말았다.

이 영화는 교통경찰.도박단.보험사기꾼에서부터 사이비 기자.사이비 종교인.세무공무원.정치인 등 사회의 '공적' 에 이르기까지 닥치는대로 두들기면서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카타르시스를 노린다.

그러나 노점 좌판처럼 에피소드들을 산만하게 늘어놓기만 했을 뿐 이야기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핵심' 이 빠진 영화가 되고 말았다.

차가운 소품창고에서 새우잠을 자고 여자친구에게 돈을 빌려쓰는 처지의 봉수와 왕기. 남들은 '엑스트라' 라 놀려대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만으로 따지면 자칭 어엿한 '배우' 다.

어느 날 단역 검사와 수사관역을 맡게 된 두 사람은 우연히 룸살롱에서 연기연습을 하다, 자신들의 연기가 진짜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한 뒤 검사와 수사관 행세를 하게 된다.

'사회악' 도 응징하고 돈도 만지는 데 재미가 든 이들의 사기행각은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정지영.장현수 등 현역 감독들이 나와 '영화 만들기' 에 관한 얘기들을 펼치고, 오직 스타가 되려는 일념으로 분투하는 단역배우들의 애환과 이들이 펼치는 해프닝이 겹치면서 영화 초반에는 '오랜만에 괜찮은 코미디' 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케 한다.

그러나 IMF 시대에 관객들의 쌓인 불만을 뚫어주겠다는 의지가 과한 나머지 모든 게 '오버' 해 버린다.

이상벽.임성훈 등 열 손가락으로도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카메오들의 남발이 그렇고 무조건 욕하고 두들겨패고 보는 임창정의 연기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맛을 앗아버렸으며, 사회문제에 대한 직설적인 규탄은 되레 주제의식을 흩트려 놓았다. 절제가 아쉽다. 8월8일 개봉.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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