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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재테크]4.“30평형대라면 몰라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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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대박증권사의 영업창구는 제법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막 2층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무모한씨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 건 안전형씨였다.

"어쩐 일이냐. 이런델 다오고. " "어, 이게 누구야. 안전형이?

야, 너 은행에서 잘렸다더니 신수 훤해졌구나. 그래, 역시 사람은 놀고 먹는게 최고야, 최고. " 예의 넙적한 얼굴에 털털한 웃음을 띄우며 무모한씨가 큰 소리로 아는 체를 했다.

주변의 시선이 잠시 두사람에게 쏠렸다. 안전형씨의 얼굴이 붉어졌다.

'놀고 먹는' 이란 말이 그렇잖아도 실직후 예민해진 안전형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난 여기 말야, 투자 상담 좀 하러왔어. 지난번 지방선거때 돈 좀 번 게 있어. 내친 김에 아파트를 하나 분양받았는데 계약이 내일이야. 해야 될지, 말아야 할지 잘모르겠어서 전문가한테 물어보러 왔지. "

"그 - 래?" "뭐, 여기 용한 투자상담사들이 그렇게 많다면서. 그런 걸 보면 밥먹고 사는 재주도 가지가지야. 남의 돈 어떻게 굴릴까 주둥이 한번 놀려주고 그걸로 먹고사는 놈들도 있으니.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손님?" 그 순간 무모한씨의 말을 자르며 지나가던 재택구씨가 두사람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당신 누군데?" "예, 대박증권사의 투자상담사입니다. 바로 손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주둥이만 놀려 먹고사는. " "어, 그걸 들었소. 허허, 미안하게 됐구먼. " 머리를 긁적이는 시늉을 하던 무모한씨가 다시 넉살좋게 입을 열었다.

"마침 잘됐소. 좀 물어봅시다. 내 얼마전 홍제동에다 41평짜리 아파트를 2억5천만원에 하나 분양받았소. 유명업체가 짓는데다 지하철역도 가깝고 시내에서 5분거리요. 소위 남들이 얘기하는 투자가치가 있는 곳이지. 그런데 막상 내일 계약을 하려니 영 찜찜해. 집값 안오를까 걱정이란 말이오. 가진 돈이라곤 달랑 그 놈의 아파트 분양비가 될동말동인데, 잘못하단 쪽박 찰까 걱정이거든. "

"서울6차 동시분양 아파트를 분양받으셨군요. 옆에 손님께서는요?" 재택구가 나타날때 부터 무모한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안전형은 자신에게 질문이 돌아오자 머쓱한 표정으로 다가섰다.

"아, 나요? 나도 이 친구와 비슷합니다." 두사람에게 상담실 의자를 권하며 재택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그 문제는 제가 요즘 제일 고민하는 것중 하나입니다. 장기적으로 집값이 오를 요인은 꽤 있습니다. 우선 나라에서 부동산 경기를 살리고자 노력중이란 점입니다.

전매도 허용하고 세금도 깎아주고 돈도 더 풀겠다는게 정부 방침입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 자기 집 소유욕이 유난히 강하다는 것도 집값 상승요인이 될 수 있죠. 그렇지만 집값 하락요인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정부에서 아무리 돈을 풀어도 이게 막상 서민들 손엔 쥐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돈이 있어야 집을 살텐데, 저 살기 바쁜 은행들이 대출을 거의 안해 줍니다.

왜냐, 대출은 바로 위험자산으로 잡혀서 재무 성적표를 나쁘게 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 ."

"게다가 금리가 12%대로 떨어졌다지만 그건 고객이 맡길때 얘기지 대출금리는 여전히 16%대의 고금리니 은행서 돈 빌려 집산다는 건 바보짓이고, 또 들고있는 현찰로 사두기에도 기회비용이나 투자수익률을 생각하면 남는 장사가 아닐것 같고 말이죠 - ."

전직 은행원 티를 내며 안전형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말꼬리를 잘린 재택구는 괜히 자존심이 상한 기분이었다. 막 입을 열어 더 유식한 체를 하려는 재택구의 말문을 가로막으며 무모한씨의 입에서 천둥같은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아, 이거 뭐하는 수작들이야. 유식한 척 헛소리들 그만하고 결론만 말해. 집을 계약해, 말아? 당신같으면 어떻게 할거야?" "지금이 집을 살 타이밍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40평형대는 아니에요. 급매물이나 경매물건으로 나온 30평형대라면 몰라도. 30평대는 올들어 값이 많이 떨어졌고 IMF시대에 가장 인기 평형이니까 오를 가능성도 있지만, 큰 평형은 더 떨어집니다."

워낙 기세등등한 무모한씨의 호통에 눌린 재택구는 단숨에 결론을 얘기했다.

"그러니까 분양받은 걸 포기하라 이 말씀이신가?" 무모한씨가 재택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짐이라도 받듯 물었다.

"에, 그러니까 - .투자는 반박자만 빨리하란 말이 있습니다. 너무 빠르면 손해란 뜻이죠. 옛말에 이르기를 '과유불급 (過猶不及) -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라고 했습니다.

저는 투자격언중 이게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집을 사기엔 지금은 한박자도 아니고 두박자쯤 빠릅니다."

안전형이 다시 끼어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니 돈 2억5천만원을 은행에 가만히 넣어두면 2년 뒤에 지금 금리로도 3억원쯤 손에 쥔다 이거야. 그런데 분양받은 아파트가 완공되는 2년 뒤에 그 집값이 과연 3억원이 되겠냐는 거지. 또 기회비용까지 따지면 최소한 2년후 아파트값이 3억몇천만원은 돼야한다 이 말씀이야. "

"그래? 알았어, 니말 믿어보자. 에이, 분양계약 포기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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